AI가 상품을 완성할 때, 경제는 사람에게로 이동한다
AI가 상품 생산을 자동화하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경제의 무게중심이 관계적 부문 — 사람이 관여하는 것 자체가 가치인 영역 — 으로 이동한다. 교사, 간호사, 치료사, 장인, 접객업. 구조적 전환의 경제학과 인간 욕망의 본질이 이 방향을 가리킨다.
스타벅스가 이 논리의 축소판이다. 지난 몇 년간 자동화를 밀어붙여 바리스타를 줄이고 기계를 늘렸다. 결과는 실패였다. CEO 브라이언 니콜은 “컵에 손글씨를 쓰고, 도자기 컵을 쓰고, 좋은 좌석을 돌려놓자 고객이 머물기 시작했다"고 인정했다1. 자동화할 수 있는데도 사람을 다시 투입한 거다.
시카고대학 경제학자 Alex Imas는 이 현상 뒤에 구조적 경제 법칙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2. 단순한 경영 실패담이 아니라, 200년 간 반복된 구조적 전환 패턴의 최신 사례라는 것이다.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1900년 미국 노동력의 40%는 농업에 종사했다. 지금은 2% 미만이다. 사람들이 밥을 안 먹게 돼서가 아니다. 농업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올라서 가격이 떨어졌고, 사람들은 소득이 늘어나면서 먹는 것 외에 다른 곳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 노동력은 제조업으로, 다시 서비스업으로 이동했다3.
경제학에서 이걸 구조적 전환(structural change)이라고 부른다. Comin, Lashkari, Mestieri(2021)는 이 패턴을 분석해서 핵심 발견을 내놓았다: 구조적 전환의 75%는 소득 효과로 설명된다3. “자동화된 부문이 싸져서 다른 걸 산다"는 가격 효과는 25%에 불과하다. 지배적 힘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 사람은 부유해지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원한다.
여기서 직관에 반하는 결론이 나온다. 자동화된 부문은 더 많이 생산하면서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든다. 반면 자동화되지 않은 부문은 상대적으로 비싸지면서 경제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한다. 이게 바로 보몰의 비용병(Baumol’s cost disease)인데, AI 시대에는 이것이 병이 아니라 기능이 된다2.
상품 형태의 논리적 종착지
산업혁명 이전에는 상품을 만든 사람과 상품을 분리하기 어려웠다. 빵을 구운 제빵사, 셔츠를 짠 직조공을 직접 알았고, 그들의 기술과 평판이 상품 가치의 일부였다. 산업화가 이걸 바꿨다.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 형태(commodity form)의 탄생이다 — 상품의 가치가 누가 만들었는지와 무관해지는 것2.
AI는 이 상품 형태의 논리적 종착지다. 사람이 전혀 없는 상품. 그런데 구조적 전환 이론이 말하는 덜 뻔한 답이 있다: AI는 상품 형태를 완성하는 동시에, 상품 형태의 경제적 비중을 축소시킨다. 자동화가 상품 생산 비용을 낮추면 실질 소득이 올라가고, 올라간 소득은 소득 탄력성이 높은 부문 — 즉 관계적 부문 — 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모방적 욕망: 왜 수요는 포화되지 않는가
여기서 핵심 질문이 등장한다. 관계적 부문의 소득 탄력성이 정말 높은가? 왜?
르네 지라르의 모방적 욕망(mimetic desire) 이론이 답을 제공한다2. 사람은 물건을 물건 자체의 속성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원한다. 남들이 갖지 못할 때 더 원한다. 이 욕망은 본질적으로 비교적이고, 따라서 쉽게 포화되지 않는다.
이건 오래된 통찰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지배욕(libido dominandi), 홉스의 영예(glory) 경쟁, 루소의 자기애(amour propre) — 모두 같은 맥락이다. 문화비평가 Dave Hickey는 이걸 더 직관적으로 풀었다: 아르마니 슈트를 사는 사람은 더 따뜻한 옷을 사는 게 아니다. 브랜드, 이야기, 의미, 다른 사람도 그걸 알아보고 원한다는 사실을 사는 거다2.
Imas와 Madarász의 실험이 이를 뒷받침한다4. 일부 사람이 제품에서 배제될 때 지불 의사가 약 2배로 뛰었다. 제품 자체는 동일한데도. 지위 과시가 아니었다(실험은 익명). “희소하면 좋을 것"이라는 직감도 아니었다(배제는 무작위). 순수하게 “남들이 못 갖는 것을 갖는다"는 선호가 작동한 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Imas와 Mandel의 후속 실험에서 AI 관여가 이 배타성 웃돈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렸다5. 사람이 만든 작품은 한정판일 때 44% 가치가 올랐지만, AI 생성물은 21%에 그쳤다. AI가 만든 것은 아무리 “한정판"이라 해도 본질적으로 복제 가능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이게 구조적 전환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음식이나 옷 같은 기본 필요는 소득이 늘어도 지출이 비례하지 않는다(엥겔의 법칙). 하지만 지위재와 관계재는 다르다 — 비교 대상이 함께 부유해지기 때문에, 소득이 늘수록 이 영역의 지출 비중이 오히려 커진다. 모방적 욕망이 본질적으로 비교적이라는 바로 그 성질이, 관계적 부문의 소득 탄력성을 구조적으로 높게 만드는 거다. 그리고 이 웃돈은 사람이 만든 것에서만 온전히 작동한다.
수요 붕괴 시나리오에 대한 반론
여기서 자연스럽게 수요 붕괴(demand collapse) 시나리오와 연결된다. Imas가 이전 에세이에서 제기한 우려다: AI가 대부분의 노동을 자동화하고 임금 비중이 붕괴하면,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가 사라져서 경제 자체가 축소될 수 있다6.
모방적 욕망은 이 시나리오에 대한 완충장치가 된다. 자동화된 상품에 대한 수요는 천장에 부딪힐 수 있지만, 관계적 상품에 대한 수요는 훨씬 넓은 범위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다2. 경제가 모든 사람에게 자동화된 물건을 계속 더 많이 사게 할 필요는 없다. 지출이 사람들이 부유해질수록 더 신경 쓰는 영역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것이 작동하려면 생산성 이득이 인구 전반에 분배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Imas 자신도 이 프레임워크가 소득 재분배가 상대적으로 활발한 선진국에 가장 잘 맞는다고 인정한다. 상품 생산으로 경제를 세운 개발도상국에는 다른, 더 걱정스러운 그림이 펼쳐질 수 있다2.
미래의 일자리: 관계적 부문
이 모델이 맞다면, 미래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는 AI 시스템 감시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아니다. 그건 자동화 부문의 과도기적 역할이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는 관계적 부문에 있다2.
이미 존재하고 성장 중인 것들: 간호사, 치료사, 교사, 개인 트레이너, 요리사, 수제 장인, 라이브 공연자, 접객업 종사자. 새로 떠오르는 것들: 경험 디자이너, 출처 인증사, 커뮤니티 큐레이터. 아직 발명되지 않은 것들도 많을 텐데, 오늘날 사람들이 하는 일의 60%가 1940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럽다2.
“모든 사람이 창의적인 건 아니다"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핵심은 피카소가 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프레임워크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커리어의 내구성은 “AI가 이 일을 대체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일에서 사람의 관여가 가치의 일부인가"로 판단해야 한다. 자동화 가능성이 아니라 관계적 밀도가 기준이다. 그리고 교육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판단력과 감각을 키우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야 한다.
비유의 한계
다만 이 프레임워크에도 한계는 있다. Philip Trammell이 날카로운 반론을 제기했다7: 역사적으로 부유해진 사회가 관계적 소비를 늘린 건 맞지만, 동시에 새로운 비관계적 상품 범주(상품 다양화)도 계속 발명되었다는 거다. 중세 부자의 소비 패턴에서 현대인의 소비를 예측할 수 없듯이, 지금의 부자 소비 패턴에서 AI 이후 시대를 예측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또한 Imas의 분석은 노동의 총 비중(aggregate labor share)이 유지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더 좁다: 관계적 부문이 경제에서 실질적인 비중(substantial share)을 차지할 것이라는 것이지, 지금보다 노동 비중이 높아진다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 프레임워크가 유의미한 이유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한다 vs 하지 않는다"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어떤 종류의 희소성이 경제를 재편하는가라는 더 생산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무엇이 희소해지는가
경제학은 결국 희소성의 학문이다. AI가 물질적 풍요를 가져올 때, 경제학이 무의미해지는 게 아니라 희소성의 종류가 바뀐다. 자동화할 수 없는 것, 복제했을 때 가치가 사라지는 것, 비교적 욕망이 영원히 추구하게 만드는 것 — 그것이 사람의 관여다.
스타벅스 사례로 돌아가면: 커피를 만드는 건 쉽게 자동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커피만 사는 게 아니었다. 컵에 적힌 손글씨, 바리스타와의 짧은 대화,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감각 — 이것들이 자동화 이후에 더 선명하게 드러난 가치였다.
구조적 전환의 경제학이 말하는 바는 이것이다: 기술이 한 종류의 생산을 싸게 만들 때, 경제는 붕괴하지 않는다. 변환된다. 기술이 싸게 만들 수 없는 것으로 이동한다. AI의 경우, 그것은 정확히 사람의 관여가 본질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니는 영역이다.
Brian Niccol (Starbucks CEO), The Guardian 인터뷰 — “Starbucks says cutting shop staff in favour of automation has failed”, 2025 ↩︎
Alex Imas, “What will be scarce?” — Ghosts of Electricity (Substack), 2026 ↩︎ ↩︎ ↩︎ ↩︎ ↩︎ ↩︎ ↩︎ ↩︎ ↩︎
Diego Comin, Danial Lashkari, Martí Mestieri, “Structural Change with Long-Run Income and Price Effects” — Econometrica, 2021 ↩︎ ↩︎
Kristof Madarász, Alex Imas, “Mimetic Dominance and the Economics of Exclusion” — Review of Economic Studies, 2024 ↩︎
Alex Imas, Graelin Mandel, “AI Involvement and Perceived Exclusivity” — SSRN Working Paper, 2026 ↩︎
Alex Imas, “Can advanced AI lead to negative economic growth?” — Ghosts of Electricity, 2026 ↩︎
Philip Trammell, 댓글 — Alex Imas 에세이 토론, 2026. “새로운 비관계적 상품 범주의 지속적 발명이 관계적 부문으로의 수렴을 상쇄할 수 있다"는 반론 제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