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블록스에서 놀던 아이들이 자라 스팀의 구매자가 되었다.” 최근 스팀에서 소셜 코옵 게임, 이른바 프렌드 슬롭이 잇달아 흥행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제가 세운 가설입니다.1 게이머들의 취향이 갑자기 바뀌었다기보다는, 원래 있던 상점에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새로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죠.
이 세대는 로블록스에서 친구들과 피자 가게를 운영하고, 경찰을 피해 달아나고, 괴물에게 쫓기는 놀이를 하며 자랐습니다. 로블록스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에 유입된 초등학생이었다면 누구나 해봤을 유명한 게임이었으니까요. 코로나 붐 때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는 시기에, 스팀에는 그 놀이와 닮은 게임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연표가 보여 주는 것
제 주장을 엄밀하게 입증하긴 어렵습니다. 대신 연표를 그려보겠습니다. 가장 큰 정황 증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로블록스 성장기에 아이들이 하던 게임, 그 아이들의 나이, 스팀 소셜 코옵의 출시를 한 시간축에 겹치면 이렇게 됩니다.2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면, 로블록스의 인기작과 스팀에서 성공한 소셜 코옵 게임들 간의 공통점이 보입니다. 친구들과 모여 즉석에서 어떤 사건을 벌이고 즐기는 경험이라는 점입니다. 역할 분담, 추격, 협동 탈출은 게임에 들어가자마자 함께 벌일 일을 줍니다. 로블록스에서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놀이와 스팀에서 괴물을 피해 고철을 모으는 놀이는, 친구들과 위험한 상황을 함께 헤쳐 나온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규칙을 오래 익힌 뒤에야 재미가 시작되는 게임이라기보다, 들어가자마자 무슨 일이든 벌어지는 게임입니다.
여기에 나이를 겹쳐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입니다. 제일브레이크와 플리 더 퍼실리티가 나온 2017년, 06년생부터 09년생은 8세에서 11세로 모두 초등학생이었습니다. 리썰 컴퍼니가 나온 2023년에는 14세에서 17세, 넷 다 중고등학생이었습니다. R.E.P.O.와 PEAK가 나온 2025년에는 16세에서 19세였고, 올해는 17세에서 20세입니다.3 이런 놀이를 접하며 자랄 수 있었던 집단이 청소년기 후반에 들어서는 동안, 스팀에는 비슷한 재미를 내세운 게임이 잇따라 나온 셈입니다. 마치 초등학생이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즐기다가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스팀으로 무대를 옮겨 비슷한 게임을 찾는 것 같은 모양새지요.
이런 흐름은 최근 도드라지는 소셜 코옵 게임의 흥행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스팀에 유입된 로블록스 세대가 새로운 구매층으로 합류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5
이미 예견된 변화
세대 이동 가설은 저만 혼자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조사 회사 뉴주의 경영 컨설턴트 로넌 패트릭은 2026년 9월 더 게임 비즈니스 인터뷰에서 “프렌드슬롭은 기본적으로 로블록스가 스팀으로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로블록스에 아주 캐주얼하고, 그래픽 충실도가 낮으며, 친구들과 터무니없고 우스운 일을 벌이는 게 중심인 놀이 패턴이 있었고, 그것을 이제 스팀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로블록스 이용자가 자라면서 남는지 떠나는지를 조사했더니 답은 둘 다였고, 나이를 먹어도 이런 사회적 경험을 계속 찾더라고 했습니다.6 연표가 정황으로 보여 주는 것을 그는 이용자 조사로 확인한 셈입니다. 게임 투자자 비니 에를링손도 2025년 11월에 같은 결론을 썼고, 로블록스 개발사 게임팸의 조 페렌츠는 리썰 컴퍼니가 나오기 두 해 반 전인 2021년에 로블록스의 관습이 게임 생태계의 다른 부분으로 퍼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7

게임을 고르는 방식도 함께 따라 온다
로블록스 게이머들이 게임을 고르는 방식은 최근 스팀에서 소셜 코옵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들이 보여주는 행동 패턴과 유사합니다.
로블록스 이용자는 2020년에 한 달 평균 스무 개가 넘는 서로 다른 경험을 오갔고, 2025년에는 스물네 개를 넘었습니다.8 돈을 내고 사는 스팀에서도 같은 습관이 보입니다. 스팀 마케팅 분석가 크리스 주코프스키가 소셜 코옵 16종의 주간 동시 접속자를 겹쳐 놓고 보니, 상위 게임이 이 장르 이용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가 몇 달 안에 10%로 내려가고 다음 게임이 그 자리를 채우는 교대가 반복되었습니다. 그는 이 팬층이 두어 달마다 새 게임을 산다고 표현했습니다.9 히트작 사이의 이용자 중복도 큽니다. 2025년 6월 PEAK 이용자의 61%가 R.E.P.O.를 이미 플레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10 히트작마다 전혀 다른 손님이 유입된다기보다는, 서로 겹치는 팬층이 다음 게임도 또 산다는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함께 할 친구가 있어야 의미가 큰 게임이므로 구매 선택도 친구 사이에서 함께 움직이기 쉽습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친구들의 구매로 번지고, 방송에서 본 장면을 직접 겪고 싶다는 기대가 다음 구매를 자극한다면, 해마다 조금씩 이어진 세대 유입이 몇 달 사이 큰 수요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11
기발하고 색다른 ‘경험’
같은 이용자들이 비슷한 코옵 게임을 또 구입하는 이유는 친구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귀신 나오는 폐가에서는 평소 침착하던 친구의 비명이, 산에서는 한 사람을 구하려다 모두 추락하는 장면이 구매자가 기대할 법한 사건입니다. 목표 달성에 실패해도 함께 기억할 사건과 웃음이 남으면 플레이 자체가 보상으로 작동합니다. 실패하고 재시도하는 과정이 페널티였던 기존의 게임과는 달리, 플레이하는 매 순간이 즐거운 경험이 되는 것이죠.

시스템은 이 사건을 만드는 장치입니다. 밧줄과 체력 규칙이 있어야 구하려다 같이 떨어지는 장면이 생기고, 괴물의 추격 규칙이 있어야 누가 먼저 도망쳤는지가 이야기가 됩니다. 이 게이머들에게 시스템은 정복할 대상이라기보다 흥미로운 사건과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무대입니다.12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게임 디자인
이 새로운 구매자 집단에게 팔 게임을 기획하고 싶다면, 답해야 할 질문부터 바뀝니다. 어떤 장르이고 어떤 세계이며 어떤 시스템이 있는가보다, 오늘 친구들이 이 게임을 함께 구입해서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입니다.
이 질문은 소개 문구를 바꾸는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게임에서도 친구들과 겪은 사건은 웃음과 이야깃거리가 되어야 하고, 그런 사건이 한두 번 일어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매번 새로운 사건이 벌어져야 합니다. 실패의 비용을 낮추고, 실패가 웃음이 되는 물리와 규칙을 넣고, 친구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창발적인 상황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죠. 친구들과 들어가자마자 사건이 시작되어야 하므로, 세계관도 글을 읽거나 긴 컷신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보자마자 게임 플레이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경험으로 전달해야 합니다.13
따라서 게임 디자인은 시스템의 깊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매 게임마다 친구들과 어떤 기발하고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죠.
맨 처음 글의 제목이 던진 질문에 답하자면, 바뀐 것은 취향보다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미 상점 안에 들어와 북적이고 있지요.
이 글의 판단은 통계적 검정이라기보다 시장 해석을 위한 작업 가설의 채택입니다. 개인이 로블록스에서 스팀으로 옮겨간 경로를 추적한 공개 자료는 없고, 당시 집단의 규모와 나이, 놀이 방식, 시차를 맞춰 본 간접 증거로 판단합니다. 주관적 확신은 로블록스 세대의 스팀 유료 구매층 합류 약 85%, 그것이 소셜 코옵 확대의 주요 원인 중 하나 약 80%, 스팀 시장 전체를 설명하는 지배적 단일 원인 약 35%입니다. ‘프렌드 슬롭’이라는 말은 개발자의 기술과 이용자를 깎아내리는 어감이 있어 본문에서는 ‘소셜 코옵’으로 씁니다(투자자 에를링손의 반대 논지: Iain Harris, GamesRadar+, 2025-12-24). ↩︎
로블록스 게임의 등장 연도와 누적 방문: GamesBeat, “Roblox’s 10 biggest games of all time”, 2019-12-09(2025-06-18 갱신). 방문은 접속 횟수이지 이용자 수가 아니고, 10억 회를 넘긴 열 개 가운데 나머지 여섯은 아바타 생활과 반려동물 기르기 같은 사교 놀이였습니다. 월간 이용자: TechCrunch, “How Roblox avoided the gaming graveyard…”, 2019-07-11. 하루 이용자와 연령: Roblox Form S-1, 2020년 9월 30일까지 9개월 기준. 연령 분포는 9세 미만 25%, 9세에서 12세 29%, 13세에서 16세 13%, 17세에서 24세 16%, 25세 이상 14%이며 이용자가 스스로 신고한 생년월일 기준입니다. 월간과 하루 이용자는 분모가 달라 직접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스팀 개발자들이 이 로블록스 게임들에서 직접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
연표의 로블록스 게임 등장 연도와 스팀 게임 출시일은 원문과 상점 페이지 기준이며(파스모포비아 2020-09-18, 리썰 컴퍼니 2023-10-23, 콘텐츠 워닝 2024-04-01, R.E.P.O. 2025-02-26, PEAK 2025-06-16), 놀이 방식 요약은 글쓴이의 것입니다. 나이 열은 2006년생부터 2009년생까지 네 출생연도에 해를 더하고 뺀 산술입니다. 이들은 2020년에 11세에서 14세로, 상장 서류의 9세에서 12세 구간(29%)과 13세에서 16세 구간(13%)에 걸쳐 있으며, 2020년 9세 미만이었던 25%(2012년생 이후)는 아직 초등학생이라 연표에 넣지 않았습니다. 학년은 한국 학제(만 6세가 되는 해 초등 입학)로 계산했습니다. 개인별 플랫폼 이동이나 게임 사이의 직접 영향 관계를 관측한 자료가 아니라 이 글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정황 증거이고, 같은 출생연도를 앞뒤로 계산한 것이라 별개의 인구를 더한 것도 아닙니다. 로블록스는 2026년 연령 검증 뒤 실제 연령이 자기 신고보다 어렸다고 밝혔으므로(Q4 2025 Shareholder Letter), 산술은 표보다 한두 해 늦어질 수 있습니다. 이 점은 가설의 시점을 앞당기기보다 늦추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특정 게임을 실제로 즐긴 사람들이 이후 스팀에서 구매했다는 관측은 없습니다. ↩︎
이 글의 표지와 삽화는 「느낌적인 느낌을 숫자로 옮기는 일」의 치비 서소영 라인아트를 참조하여 gpt-image-2 image-to-image로 생성했습니다. ↩︎
여기서 합류는 로블록스를 그만두고 스팀으로 갈아탔다는 뜻이 아닙니다. 로블록스를 계속 하면서 스팀에서 처음으로 유료 게임을 사는 것도, 무료 게임만 하던 스팀 계정으로 만 원짜리 코옵을 결제하기 시작하는 것도 같은 이동입니다. 로블록스의 하루 이용자는 2025년 4분기 1억 4,400만 명으로 계속 늘었습니다(앞의 Q4 2025 Shareholder Letter). 이 성장과 가설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이주를 로블록스 이탈로 좁게 정의하면 자료가 없지만, 병행과 유료 구매 시작까지 포함하면 스팀 쪽의 구매 행동 자료(각주 8, 7)가 간접 증거가 됩니다. ↩︎
Christopher Dring, The Game Business, 2026-09-03. 원문: “Friendslop is basically Roblox coming to Steam. It’s the existing play pattern of highly casual, low graphical fidelity, and an overwhelming emphasis on doing absurd, funny, gimmicky things with your friends, and then that’s just being captured by Steam.” 인터뷰에 조사의 표본과 방법, 전환 규모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
에를링손: LinkedIn 게시물, 2025-11-25(게시물 식별자 타임스탬프 기준). Z세대와 알파세대가 로블록스와 토카 보카와 마인크래프트에서 친구들과 놀고 웃으며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경험을 찾을 텐데 지금의 시장은 그들을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논지. 비홀드 벤처스 프린시펄이며 이전에 토카 보카와 마인크래프트에서 분석을 이끌었다고 소개합니다. 페렌츠: Joe Ferencz, TechCrunch, 2021-03-26. 크리에이티브 블록의 앨런 웬도 2025-12-20 기사에서 이 게임들이 “포스트 로블록스 관객"에게 닿고 있다고 썼습니다(Creative Bloq). 모두 이 시장에 이해관계가 있는 업계 발언이라 관측 자료로 세지 않았고, 의견을 독립 표본처럼 곱해 확신을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
2020년 수치는 앞의 S-1(하루 이용자 1인당 하루 2.6시간, 월 20개 이상의 경험), 2025년 수치는 앞의 Q4 2025 Shareholder Letter(월 24개 이상). 이 수치는 로블록스 안에서 새 놀이로 자주 옮겨 다녔다는 데까지만 말해 줍니다. 여러 게임을 오가는 것과 한 게임을 오래 하는 것은 얼마든지 함께 갑니다. 그래도 ‘오늘 친구들과 무엇을 할까’를 고르는 소비에서는 게임 하나가 장기 정착지라기보다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되고, 이 습관이 플랫폼 밖의 유료 구매에도 이어지는지는 스팀 쪽 자료와 맞춰 봐야 합니다. ↩︎
Chris Zukowski, “Is friendslop saturated?”, 2026-07-30. 저자가 고른 16종의 주간 동시 접속자 시계열이라 동일인의 이동을 추적한 자료는 아닙니다. ↩︎
Alinea Analytics, “Steam June 2025”, 2025-07-02. PEAK 이용자의 약 40%는 콘텐츠 워닝도, 30%는 리썰 컴퍼니도 플레이했습니다. 자체 플랫폼 추정치이며, 중복이 커서 히트작마다 새 인구를 더해 세면 안 됩니다. ↩︎
급증에는 다른 원인도 겹쳤습니다. 가격(뉴주 집계로 PC에서 30달러 미만이면서 매출 500만 달러를 넘긴 게임 수가 2024년 17개에서 2025년 26개로 증가, Newzoo, 2026-03-12), 방송을 통한 발견, 아시아 이용자의 스팀 유입. 장르의 기원도 이 세대보다 앞섭니다(파스모포비아 2020년 9월, 어몽 어스 2018년). 이 글은 장르의 탄생보다 최근의 수요 증폭을 이 세대로 설명하며, 스팀 시장 전체를 설명하는 단일 원인으로 두지 않습니다. ↩︎
숙련 동기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Quantic Foundry가 2015년 6월부터 2024년 4월까지 157만 명의 응답으로 본 12개 동기 가운데 장기 계획과 다변수 판단을 뜻하는 Strategy만 뚜렷이 내려갔고(2015년 50백분위 기준 2024년 33백분위), 도전이나 조작 숙련 동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Nick Yee, 2024-05-21, 서구 코어 PC/콘솔 이용자 편중). Balatro가 2025년 1월 500만 장을 넘긴 것처럼(Playstack) 시스템형 신작도 계속 성공합니다. 이 글이 말하는 것은 상대적 선택 기준과 구매층 구성의 변화입니다. ↩︎
모든 게임을 코옵으로 만들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세대가 서른이 되어도 같은 것을 살지, 즉 세대 효과인지 연령 효과인지는 열린 질문입니다. 참고로 영국 Ofcom의 8세에서 14세 기기 측정(2024년 11월부터 2025년 3월, 692명, 콘솔 제외)에서 로블록스 하루 이용 시간은 10세에서 12세 12분, 13세에서 14세 5분으로 13세를 넘기며 줄지만, 동일인 추적이 아니고 줄어든 시간이 스팀으로 갔다는 자료도 아닙니다(Ofcom, 2025-06-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