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1. 롱블랙이 89세 하버드 명예교수 제럴드 잘트만(Gerald Zaltman)과 화상 인터뷰. 그는 AI에게 아무리 잘 물어봐도 사용자 자신의 무의식 — 생각의 95% — 에는 닿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2. 해법은 ‘묻는 법’이 아니라 ‘꺼내는 법’이다. 잘트만이 개발한 ZMET(은유 추출 기법)은 이미지와 은유를 단서로 본인도 모르는 동기를 끄집어내는 방법론이고, 오티콘·맥주·은행 사례로 그 작동 방식이 설명된다.
  3. AI 시대에 차이를 만드는 건 ‘What should I do?(뭘 해야 하지?)‘가 아니라 ‘How should I be thinking?(어떻게 생각해야 하지?)‘이라는 두 번째 출발점이다. 인과를 뒤집고, 놀이하듯 헛소리를 허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는다.

제럴드 잘트만

자료의 정체

롱블랙이 2026년 5월 11일 발행한 노트 1975다. 작성자는 ‘롱블랙 프렌즈 C’ — 트렌드를 즐기며 패션·뷰티·콘텐츠의 새 브랜드를 찾아다니는 주니어 마케터로 소개된다. 롱블랙 스페셜 ‘이야기 자본‘에서 “인간의 뇌는 문어를 닮았다"고 말했던 잘트만 교수를 한 번 더 호출해, 이번에는 AI 시대의 사고법을 묻는다.

도입부의 문제 제기가 인상적이다.

AI를 쓰다 보면 ‘답변이 시원찮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좋은 질문이에요!“라며 몇 초 만에 보내온 답이, 어디선가 봤던 것들로 채워져 있던 적이 꽤 있었죠. 왜 그런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할 사람으로 잘트만을 골랐다. 잘트만은 1991년부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로 연구해 왔고, 마케팅 학문 공헌자에게 2년마다 수여되는 ‘셰스 재단 금메달상’ 수상자이며, 현재 연구 컨설팅 회사 올슨 잘트만 연구소를 공동 설립해 활동 중이다. 코카-콜라·P&G 같은 글로벌 기업이 그에게 소비자 행동 분석을 의뢰해 왔고, 대표 저서 『How Customers Think』는 20개 언어로 번역됐다. 2026년 2월 미국에서 신간 『Dare to think differently』 — 롱블랙이 번역한 한국어 제목은 『다르게 생각할 용기』 — 를 냈다.

화상 인터뷰는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사람은 자기 마음도 모릅니다. 내 마음조차 모르니, AI에게 질문해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에 우리가 알아야 할 건 ‘묻는 방법’이 아니라, ‘꺼내는 방법’이죠.”

출발점 — “생각의 95%는 무의식이다”

말과 의미 사이의 간극

잘트만은 먼저 우리가 자신을 합리적이라 믿는 전제를 깬다.

“우리는 자신이 합리적으로 생각할 거라고 믿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는 인간의 말과 속마음 사이에 늘 간극이 있다고 본다. 이를 ‘say-mean gap(말과 의미 사이의 간극)‘이라 부른다. 사례로 든 것이 덴마크 보청기 회사 오티콘이다.

2000년대 초 오티콘은 청력 손상자의 약 80%가 의사 권유에도 보청기를 사지 않는 문제를 겪고 있었다. 설문 답은 늘 “비싸다”, “불편하다"였다. 기술을 개선하고 가격을 낮춰도 매출은 제자리였다. 일대일 대면 인터뷰로 접근법을 바꾸자 진짜 이유가 드러났다 — 사람들은 ‘보조 기구(aid)‘라는 이름이 붙은 보청기의 개념 자체를 싫어했던 것이다. 젊은 소비자는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이길 두려워했고, 나이 든 사람들은 ‘늙어 보이는 것’을 싫어했다.

오티콘은 제품 컨셉을 ‘개인용 청각 기기(personal hearing device)‘로 바꾸고 이어폰을 닮은 12색 모델 ‘Delta’를 2006년 출시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Delta 구매자의 73%가 난생처음 보청기를 사는 사람이었다. 당시 업계 평균인 39%의 거의 두 배. 6개월 뒤 뉴욕타임스에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보청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왜 소비자들은 처음부터 명쾌하게 정답을 내놓지 않았을까요? 자신도 자기 생각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95%는 무의식에서 일어나요. 우리가 인지하는 건 5% 정도죠. 설문조사를 돌려도 전부 여기만 건드립니다. 소비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자기 속내를 모를 뿐이죠.”

은유를 들여다보면 무의식이 보인다

은유의 일상성

그럼 그 95%에는 어떻게 닿을 수 있을까. 잘트만의 답은 ‘은유(metaphor)‘다.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일상 언어 자체가 은유로 직조되어 있다는 진단이다.

“‘제 말뜻 알아보셨어요See what I mean?‘라는 문장을 볼까요? 여기서는 ‘이해하다understand’ 대신 ‘보다see’라는 비유를 쓰고 있어요. 이번엔 ‘제 말뜻 알아들으셨어요Grasp my message?‘는 어떤가요. 이번엔 ‘잡다grasp’라는 은유를 썼죠.

이렇듯 우리는 숨 쉬듯 은유를 사용해요. 방금도 제가 ‘숨 쉬듯’이라는 은유를 사용했네요.”

한국어도 다르지 않다. ‘밥 먹듯 쉽다’, ‘목이 빠지도록 기다린다’, ‘마음이 무겁다’. 잘트만은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1분에 약 6개의 은유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ZMET — 이미지와 대화로 은유를 끌어낸다

잘트만이 무의식의 은유를 끌어내기 위해 만든 도구가 ZMET(Zaltman Metaphor Elicitation Technique)다. AT&T, 코카-콜라, 유니레버에서 쓰였고 특허도 받았다. 절차는 단순하다.

단계내용
1인터뷰 대상자에게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10장 정도를 사전에 모아오게 한다
2약 2시간 동안 일대일로 마주 앉아 대화
3“왜 이 이미지를 골랐나요?”, “이 사진을 짧은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면일까요?” 같은 추상적 질문을 던진다
4대상자가 툭툭 내뱉는 은유에서 진짜 속마음을 길어 올린다

ZMET 인터뷰 장면

은행 케이스 — 재무 계획은 ‘돌 많은 언덕길’

이미지 개선을 의뢰한 은행에서 잘트만은 재무 계획에 어려움을 겪는 40대 고객을 만났다. ‘재무 계획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라는 질문에 고객은 이렇게 답했다.

“인생 계획 짜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잖아요. 돌 많은 언덕길이 떠올라요.”

은유는 ‘돌 많은 언덕길’. 고객은 재무 계획을 ‘어려운 것’이 아니라 ‘험난한 여정’으로 느끼고 있었다. 은행에 주어진 처방은 ‘수익률’이 아니라 ‘함께 걷는 길’의 이미지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맥주 케이스 — 몸은 ‘나쁜 것을 비우고 채우는 용기’

맥주 브랜드 광고를 위해 소비자에게 평소 일상을 표현해 달라고 하자 답이 돌아왔다 — “걱정과 스트레스로 꽉 차 있어요. 불쾌한 기분이 한가득이에요.” 퇴근 후 맥주를 마신 뒤의 기분을 물었더니 — “일상에서 쌓인 나쁜 것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아요.”

잘트만은 이 답들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뭔가를 담아내는 용기(container)‘로 표현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자 맥주는 ‘나쁜 것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것’으로 해석됐다. 회사는 유리잔에 맥주를 힘차게 붓는 장면을 광고 전면에 내세웠다. 잔은 사실상 소비자의 몸을 상징한다.

“무의식을 잘 설계하면 소비자들에게 광고 문구에 없는 정보를 줄 수 있습니다. 광고와 마케팅은 소비자의 은유로 무의식을 먼저 읽고 신중하게 이미지를 전달해야 해요.”

심층 은유 분석 — 3단계

심층 은유 도식

잘트만은 이런 작업이 마케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돈’에 대한 사람들의 무의식을 파고드는 과정을 예로 든다.

1단계. 일상에서 쓰는 말을 모은다.

  • “돈이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새나간다”
  • “돈을 물 쓰듯 쓰지 마라”
  • “은행이 그의 자산을 동결했다”

2단계. 공통점을 찾아 묶는다. 위 셋의 공통점은 모두 돈을 ‘물/액체’로 다룬다는 것.

3단계. 진짜 속마음을 해석한다. 액체 은유 안에는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불안이 녹아 있다. 잘트만은 이를 ‘자원(Resource)‘으로 종합한다.

이렇게 얻어진 통찰을 잘트만은 ‘심층 은유(Deep metaphor)‘라 부른다. 사람들이 어떤 제품·서비스에 어떤 심층 은유를 투영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기업의 과제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가벼운 헛소리"가 무의식을 건드린다 — 바닷가재와 망원경

바닷가재 눈과 아인슈타인 프로브

일상 업무 현장에서도 무의식을 끌어낼 수 있을까. 잘트만의 답은 “놀이하듯 일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례로 든 것은 한 천문학 연구팀.

새 우주 망원경 개발 중 아이디어 고갈을 겪던 팀이 방법을 바꿨다 — “지금부터 가장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내보자.” 한 사람이 말했다.

“바닷가재(랍스터) 눈이랑 망원경 렌즈가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요?”

회의장 전원이 웃었다. 그러나 바닷가재 눈에는 수천 개의 작은 거울 같은 기관이 박혀 있어 사방에서 오는 빛을 동시에 잡아낸다. 이 통찰이 2024년 1월 발사된 우주 망원경 ‘아인슈타인 프로브(Einstein Probe)‘로 이어졌다. 지구를 세 바퀴 도는 동안 밤하늘 전체를 관측할 수 있는 광시야 망원경이다.

잘트만이 강조하는 ‘놀이의 조건’은 단호하다.

“놀이를 할 때만큼은 모든 조직원이 수평적이어야 합니다. 원칙은 하나예요. 말도 안 되는 말을 편히 꺼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리더가 권위를 뺀 채 한 명의 참가자로 앉고, 누구의 아이디어도 비난하지 않아야 하죠. 가장 비현실적인 아이디어에도 일단 박수를 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사고 출발점 — ‘안다’ vs ‘모른다’

잘트만이 이 인터뷰의 핵심으로 꼽는 대목이다. 같은 문제 앞에서 출발점이 무엇이냐가 후속 질문 전체를 결정한다.

출발점이어지는 질문결과
나는 소비자를 안다What should I do?(뭘 해야 하지?)기존 답 중에서 해결책 찾기. 남이 한 일 따라하기. AI에게 묻고 뻔한 답 받아들이기 — 대리 사고(proxy thinking)
나는 소비자를 모른다How should I be thinking?(어떻게 생각해야 하지?)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의심. 답이 틀린 게 아니라 질문이 틀렸을 수 있다고 의심

“두 관점이 낳는 차이는 엄청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을 찾느라 바쁘지, 자기 질문이 맞는지는 점검하지 않아요. AI가 모든 답을 내놓는 지금, 내 질문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비싸서 안 사요’라는 고객 답을 그대로 믿었던 보청기 회사 오티콘이 첫 번째 출발점에 머물러 있던 사례다.

인과관계를 뒤집어 보자 — 만화경 사고

만화경

두 번째 출발점을 훈련하는 방법으로 잘트만은 ‘인과관계를 거꾸로 생각해 보기’를 제안한다. 시차(jet lag) 연구가 예시다.

한때 시차 연구자들은 “여행 전에 시차를 걱정할수록 시차 적응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걱정 → 시차 악화. 그런데 인과는 정반대였다. 원래부터 시차에 취약한 신체 구조의 사람들이 따로 있었고, 그들이 매번 시차를 겪으니 당연히 여행 전에 걱정한 것이다. 시차 취약 체질 → 매번 고생 → 여행 전 걱정. 데이터는 똑같이 ‘걱정하는 사람은 시차를 심하게 겪는다’를 보여주지만, 원인은 뒤집혀 있었다.

“무지ignorance는 우리를 참신한 사고로 이끈다. 이미 존재하지만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것들이 있다. (…) 이때 ‘만약~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면, 다른 시야가 확보된다. 이는 꼭 돌릴 때마다 극적으로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만화경kaleidoscope과 비슷하다. 이 질문은 꽤 정석적인 전략을 탁월한 전략으로, 실패한 해결책을 성공적으로 바꿀 수 있다.”
— 『Dare to think differently』 61쪽

의미 부여 — AI가 못 하는 인간의 영역

다르게 생각할 용기

인터뷰 후반, 잘트만이 도달하는 결론은 단순하다. 마음과 뇌의 역할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음과 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사물을 보고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유추하죠. 이는 AI의 ‘논리 기반 사고’와는 반대되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에요.

그렇기에 AI가 발전해도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중요한 문제가 닥쳤을 때, 그 해답을 무턱대고 AI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 그 문제를 겪는 당사자와 이야기하고, 마음을 살펴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마지막 메시지는 인터뷰어에게 직접 건넨 것이다.

“사실 자기 생각을 들여다보려면 겸손해야 하고, 또 용기를 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당신이 내리는 결정이 당신을 만드는 게 아니라고. 당신의 생각이 당신을 당신답게 만드는 거예요.”

신간 제목에 ‘용기’가 들어간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다수가 합의한 표면 답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기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 자기 안의 편치 않은 진실을 마주할 의지가 먼저라는 함의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

‘AI 답변이 시원찮다’는 익숙한 불만에서 출발해, 무의식이라는 거리 먼 개념까지 한 호로 이어 보이는 노트의 구성이 영리하다. 보통 ‘AI 답변이 별로다’는 문제는 모델 성능·프롬프트 기법의 문제로 환원되는데, 잘트만은 이를 인간 쪽 데이터의 한계 문제로 재정의한다. 모델이 더 좋아져도 학습 데이터가 ‘의식이 표현한 언어’에서만 길어 올려진다면 무의식의 층은 영원히 빠진 채로 남는다.

흥미롭게도 같은 진단이 머신러닝 진영에서도 다른 경로로 나온다. 최근 RLHF 정렬 과정의 ‘typicality bias’ 연구는, reward model이 친숙하고 처리하기 쉬운 답을 더 높이 평가하도록 인간 라벨러의 인지 편향이 데이터에 박힌다는 점을 보인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데이터에 새겨진 인간 인지가 문제라는 것이다. 잘트만이 임상·인터뷰의 언어로 가리킨 ‘표면성’을, ML 진영은 보상 구조의 결과로 설명한다. 두 갈래가 같은 결론에 닿는다.

한 가지 더 — 교육심리학자 존 스웰러의 인지 부하 이론으로 보면, AI는 외재적 부하(extraneous load)를 줄여 주는 외부 기억장치 역할을 한다. 문제는 사용자가 내재적 부하(germane load) — 자기 머릿속에서 일어나야 할 내면화 — 까지 AI에 떠넘기는 순간이다. 그러면 지식의 내면화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ZMET은 정확히 반대 방향의 작업이다. 소비자가 자기 안의 은유를 직접 끄집어내도록 강제하는 과정이며, 외주가 가능한 종류의 일이 아니다. 잘트만이 굳이 ‘AI에게 물어봤자’라는 표현을 쓴 까닭이 이 지점에서 직관적으로 만져진다.

같은 롱블랙은 한 달 전쯤 107세 철학자 김형석과도 비슷한 인터뷰를 했다. 노학자 둘을 같은 포맷으로 두 번 호명한 셈이다. 89세의 잘트만과 107세의 김형석이 AI 시대를 진단할 때 어떤 톤을 공유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 — 한 자료를 읽고 다른 자료를 이어 읽으면 시야가 한 뼘쯤 더 넓어진다.

이 진단들이 옳다면, ‘AI에게 어떻게 더 잘 묻느냐’보다 질문하기 전에 자기 안을 어떻게 더 깊이 들여다보느냐 가 먼저다. AI 시대의 진짜 격차는 프롬프트 기술이 아니라, 자기 무의식을 마주할 용기에서 갈리는지도 모른다.

출처

롱블랙 프렌즈 C | 롱블랙 | 2026.05.11 원문: https://longblack.co/note/1975

잘트만의 또 다른 비유 ‘인간의 뇌는 문어를 닮았다’는 롱블랙 스페셜 이야기 자본 (노트 1926)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신간 『Dare to think differently』(Stanford Business Books, 2026)는 2026년 5월 현재 국내 미출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