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1. 벤처캐피털 Conviction의 제너럴 파트너 마이크 버널(Mike Vernal)이 2026년 9월 16일 X에 에세이 한 편을 올렸다. AI가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을 0에 가깝게 떨어뜨리면 소프트웨어 기업의 해자가 어떻게 바뀌는지 다룬 글이다.
  2. 버널의 진단으로는 복제 비용, 전환 비용, 네트워크 효과라는 기존 해자 세 가지가 모두 약해진다. 그 대신 아마존처럼 매일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그 이익을 재투자하는 규모 전략이 새 해자가 된다고 보았다. 그렇게 누적한 소프트웨어가 많을수록 경쟁자가 그만큼을 복제하는 데 드는 비용도 커진다고 했다.
  3. 산업 구조에 대해서는 인터넷 이후의 신문 산업과 같은 재편을 전망했다. 그의 예상으로는 구매 조직이나 산업마다 하나씩 남는 거대 기업과 급증하는 소규모 소프트웨어 사업자만 살아남는다. 중간 규모의 단일 기능 솔루션은 통합되거나 사라진다.

무슨 자료인가

마이크 버널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Facebook에서 검색, 로컬, 개발자 제품을 맡은 부사장이었다. 이후 Sequoia Capital의 파트너를 지낸 뒤, 2025년 1월 사라 구오(Sarah Guo)가 세운 벤처캐피털 Conviction에 제너럴 파트너로 합류했다. Rippling, Notion, Clay의 초기 투자자이기도 하다.

이 글은 2026년 9월 16일(한국 시각) X의 장문 게시 기능인 X Article로 공개됐다.

신문 산업이 먼저 겪은 재편

버널은 스트래처리(Stratechery)의 벤 톰프슨(Ben Thompson)이 즐겨 드는 비유로 글을 시작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인 1990년대에 신문사는 꽤 괜찮은 사업이었다. 지역마다 경쟁자가 적어서 신문사가 독자의 관심을 독점했고, 워런 버핏도 신문사를 좋아했다.

이 독점은 배포 인프라에서 비롯됐다. 디모인(Des Moines)에 사는 독자가 뉴욕타임스를 받아 보기는 비교적 어려웠고, 지역지인 디모인 레지스터를 구독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그런데 인터넷이 등장해 배포 비용이 0이 되자 시장이 재편됐다. 버널이 제시한 2002년 발행 부수와 현재 구독자 수는 다음과 같다.

신문2002년 인쇄 발행 부수현재 구독자 수(추정)1변화
The New York Times1,113,000약 1,340만 (2026)+1,104%
The Washington Post746,724약 250만+235%
Los Angeles Times965,633약 24.3만 (2025)-75%
Chicago Tribune613,429약 14.9만-76%
San Francisco Chronicle512,129약 13.8만-73%
The Dallas Morning News521,956약 6.1만 (2025년 1분기)-88%
Newsday578,8095만 이상 (2022년경)-91%

비교 대상으로 버널은 레니 라치츠키(Lenny Rachitsky)의 뉴스레터를 들었다. Lenny’s Newsletter의 구독자는 120만 명 이상이고, 유료 구독자도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이 글의 독자라면 아마 뉴욕타임스와 X, 그리고 여러 서브스택(Substack) 뉴스레터를 함께 보며 뉴스를 접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신문 산업에서는 중간층이 사라졌다고 버널은 정리했다. 이제 신문사는 세계 최상위 신문이 되거나, 1인 사업자나 소규모 사업자로 남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중간 규모 신문이 사라지고 최상위 신문과 소규모 발행자만 남은 이 구조를 바벨(barbell)에 비유했다.

아마존의 해자를 만든 재투자

오늘날 아마존과 경쟁한다는 생각만 해도 지친다고 버널은 썼다. 항공기 수십 대, AWS 서비스 수백 개, 트럭 수만 대로 이뤄진 해자가 깊고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창기를 떠올려 보면, 아마존은 주요 테크 기업 가운데 출발 당시의 방어력이 가장 약한 회사였다. 당시 아마존이 한 일은 인터넷으로 책을 파는 것뿐이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대량으로 사들여 작은 상자에 다시 포장한 뒤 배송했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존은 어떻게 약 30년 만에 방어력이 가장 약한 기업에서 가장 강한 기업이 되었을까. 버널은 끈질긴 실행과 재투자 덕분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마존의 해자를 “7,500일 이상의 기간 동안 무언가를 만들고, 이익을 거두고, 더 많은 것을 만든 결과"라고 표현했다.

소프트웨어 해자의 세 가지 원천과 AI

버널에 따르면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기업은 해자를 세 가지 요소에 의존한다. 그는 AI 덕분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비용이 점점 0에 가까워지면, 이 세 가지가 각각 다음과 같이 약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존 해자AI 시대에 벌어지는 일
이미 만든 것을 똑같이 다시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복잡성소프트웨어를 훨씬 빠르고 싸게 복제할 수 있다
한번 도입한 시스템을 다른 시스템으로 바꾸는 데 드는 전환 비용소프트웨어 마이그레이션을 점점 더 자동화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연동, 전문가, 시스템 통합업체로 이뤄진 생태계가 만드는 네트워크 효과연동을 자동화할 수 있고, AI가 상위 5% 인력보다 뛰어난 전문가 역할을 한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마존의 해자는 항공기, 트럭, 데이터센터로도 설명할 수 있다. 버널은 멈추지 않는 재투자로도 이를 설명했다. 첫날의 아마존은 경쟁하기 쉬운 상대였고, 2년 차에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차가 되자 경쟁자는 앞선 9년 동안 아마존이 한 작업을 대부분 다시 해내야 했다. 아마존이 한 번도 투자와 개발을 늦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널이 보기에 같은 논리는 AI 시대에도 통한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양이 1,000배로 늘고, 그 규모로 10년 동안 매일 만든다면, 그 회사의 해자는 AI 시대에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AI로 만든 소프트웨어를 복제하려면 여전히 수년의 시간과 수십억 달러가 들 것이고, 경쟁자는 그 회사와 경쟁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지칠 것이라고 했다.

해밀턴 헬머(Hamilton Helmer)가 말한 일곱 가지 힘(7 Powers)도 소프트웨어 기업에서는 상대적 중요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버널은 추측했다.2 그의 예상에서 전환 비용과 네트워크 효과는 덜 중요해지고, 규모의 경제와 브랜드는 더 중요해진다.

이어서 버널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가볍게 들릴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앞으로 지배적인 소프트웨어 전략은 규모 기반이 될 것이다. 매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이익을 재투자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만드는 방식이다. 이미 만든 소프트웨어를 복제하는 데 드는 극단적인 비용이 해자의 일부가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바벨화

소프트웨어 산업이 장기적으로 1990년대 이후의 신문 산업과 비슷한 재편을 겪을 수 있다고 버널은 내다봤다.

소수의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

버널은 먼저 매우 큰 소프트웨어 기업의 수가 지금보다 적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기업 시장에서는 영업, 마케팅, 재무, 인사, IT 같은 구매 조직(buying center)마다 AI 네이티브 시스템 하나만 쓰일 것이라고 보았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서는 주로 Rippling 같은 올인원 시스템 하나가 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했다.3

법률, 금융, 의료처럼 산업마다 큰 소프트웨어 기업이 하나씩 생길 것이라는 예상도 덧붙였다. 산업마다 지배적인 업계 전문지가 하나씩 있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버널에 따르면 이 기업들은 압도적으로 많은 제품을 만들고 강력한 시장 진출 역량(GTM)을 갖춰 경쟁에서 이긴다. 자기 구매 조직의 요구를 어떤 경쟁자보다 잘 충족하기만 하면 된다.

중간 규모 솔루션의 소멸

반면 중간 규모의 단일 기능 솔루션(point solution)은 대부분 통합되거나 사라질 것이라고 버널은 예상했다. 승자가 택할 최적의 전략은 모든 기능을 직접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작은 소프트웨어의 급증

‘작은’ 소프트웨어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버널은 예상했다. 대부분은 개인이나 회사가 직접 쓰려고 만드는 소프트웨어겠지만, 틈새 소프트웨어를 파는 소규모 사업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현상을 2010년대에 Shopify와 Meta 광고 덕분에 D2C(소비자 직접 판매) 브랜드가 급증한 일에 견주었다. 사람들이 Lovable 같은 도구로 앱을 1억 개 만든다면 그 앱들의 성과는 멱법칙 분포를 따를 것이고, 그 가운데 몇몇 앱은 탄탄한 소규모 사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4

벤처 투자를 받는 기업을 위한 답

벤처 투자를 받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고 있다면 답은 이번에도 “모든 것을 하라"라고 버널은 말했다. 제품 전체를 직접 다 만들라는 조언이다. 그는 해자를 지금까지 만든 것의 총합, 그리고 구매 조직을 완전히 확보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버널은 이 대목을 이렇게 맺었다.

중간에는 안전한 곳이 없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소프트웨어 시대의 서브스택

작은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무엇이 서브스택 역할을 맡고 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버널은 밝혔다. 그래도 D2C 커머스와 마찬가지로 애그리게이터(예: Meta)와 플랫폼(예: Shopify, Substack)이 모두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초기 시도로는 Lovable, Bolt, Wabi 등을 꼽았고, 작은 소프트웨어 시장에 대해 의견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말로 글을 끝냈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

‘복제 비용’이라는 말은 이 글에 두 번 나오고, 두 번의 역할이 서로 반대다. 처음에 그는 AI 덕분에 소프트웨어를 빠르고 싸게 복제할 수 있게 되므로, 복제 비용에 의존하던 해자가 약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몇 문단 뒤에서는 이미 만든 소프트웨어를 복제하는 데 드는 극단적인 비용이 미래 해자의 일부가 된다고 했다.

두 주장이 함께 성립하려면 복제 비용을 산정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기능 하나를 다시 구현하는 엔지니어링 난이도가 복제 비용을 결정했다. 버널이 말하는 새 복제 비용은 10년 동안 AI로 매일 만든 소프트웨어의 누적량에서 생긴다. 경쟁자도 같은 AI 도구를 쓸 수 있다. 따라서 두 회사의 격차는 누가 먼저 시작했고 재투자를 얼마나 오래 이어 왔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버널이 아마존을 첫 사례로 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첫날에는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는 사업을 하던 아마존은 약 30년 동안 재투자를 이어 가며 가장 방어력이 강한 기업이 되었다. 버널이 그리는 미래의 소프트웨어 기업은 그 과정을 1,000배 빠른 속도로 반복하는 회사다.

출처

마이크 버널(Mike Vernal), 「Moats & the Barbell-ification of Software」, X Article, 2026년 9월 16일(한국 시각). 원문: https://x.com/mvernal/status/2099885132379500562

필자 약력: 위키백과 「Mike Vernal」, 사라 구오의 Conviction 합류 발표(2025년 1월 31일).


  1. 버널은 표 아래에 현재 구독자 수를 Claude가 조사했다고 적었다. ↩︎

  2. 헬머가 2016년 저서 『7 Powers: The Foundations of Business Strategy』에서 정리한 지속적 경쟁우위의 일곱 가지 원천이다. 규모의 경제, 네트워크 경제, 역포지셔닝, 전환 비용, 브랜드, 독점 자원, 프로세스 역량을 말한다. ↩︎

  3. 버널은 Sequoia 시절 Rippling에 초기 투자했다. ↩︎

  4. 버널은 이런 소규모 기업이 벤처 투자에 맞는 대상은 아닐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많은 창업자와 투자자가 이들을 벤처 투자 대상으로 여겨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성공하는 곳은 창업자 한 명이나 작은 팀이 사업 전체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서브스택 뉴스레터와 비슷한 모습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