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바람의나라’, ‘리니지’, ‘아키에이지’를 만든 1세대 개발자 송재경 넥써쓰 고문이 지난 7월 20일 깃허브에 1인 개발 MMORPG ‘오픈 MMO’를 공개했다. 30년 경력에서 처음으로 상업성 계산을 벗어나 만든 취미 프로젝트다.
- 핵심 설계는 AI 에이전트와 인간의 동등성이다. 에이전트에게 특권 API를 주지 않고 인간과 같은 웹소켓 프로토콜로 접속하게 해, 서버는 접속자가 인간인지 에이전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코드는 직접 쓰지 않고 AI에게 맡기는 바이브코딩으로 개발했다.
- 만 58세가 되어 단기 기억이 떨어지며 코딩이 힘들어졌지만, AI에 일을 시키는 방식으로 전성기 퍼포먼스를 회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2층, 3층 건물이나 바닷물과 강 렌더링처럼 3차원 공간 이해가 필요한 작업에서는 AI와 오래 씨름했다.
‘오픈 MMO’는 어떤 프로젝트인가
송재경 넥써쓰 고문이 지난 7월 20일 깃허브에 1인 개발 MMORPG ‘오픈 MMO’를 공개했다. AI 에이전트와 인간 플레이어가 같은 프로토콜로 접속해 서버조차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구조, 그리고 코드를 직접 작성하지 않고 AI에게 맡기는 바이브코딩 방식이 화제가 됐다.
핵심 설계는 ‘AI 에이전트와 인간의 동등성’이다. 에이전트에게 별도의 특권 API를 주지 않고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웹소켓 프로토콜로 접속하게 해, 서버는 접속자가 인간인지 에이전트인지 구분할 수 없다. 게임은 32km × 32km 규모의 절차 생성 월드, 쿼터뷰 3D, 직업 7종과 주사위 능력치 배분 등 ‘울티마’ 계열 고전 MMORPG의 문법을 따른다.
공개 직후 만난 그는 자신을 “집에서 쉬고 있는 백수"라고 소개했다. 이번 ‘오픈 MMO’는 30년간 조직을 이끌며 상업성을 계산해 온 개발자가 처음으로 그 계산에서 벗어나 만든 결과물이었다. 동시에 AI가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한 국면을 가장 앞자리에서 목격한 사람의 기록이기도 했다.
송재경 넥써쓰 고문 ⓒINVEN (사진: 김수진 기자)
“다시 전성기만큼의 퍼포먼스를 낸다”
게임을 하나 내놓았다는 질문에, 그는 아직 게임이라 부르기 어려운 오픈소스 프로젝트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지금 상태는 게임이라고 보기 어렵고(웃음), 그냥 오픈소스 프로젝트입니다. 작업을 시작한 건 작년 8월이었어요. 처음 한 달쯤 하다가 한참 놀았습니다. 9월, 10월, 11월, 12월, 해가 지나 1월까지 딴짓을 하느라 커밋이나 진척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다 1월 말, 2월부터 다시 열심히 하기 시작해서 지금 7월이니까, 논 기간을 빼면 전체적으로 7개월쯤 한 셈입니다.
프로젝트를 하는 건, 집에서 놀다 보니 일종의 취미가 됐어요. 평생 프로그램을 짜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데, 사실 이 나이(만 58세)가 되면 프로그래밍이 좀 어려워집니다. 못 하는 건 아닌데 단기 기억이 매우 안 좋아져요. 그러니까 계속 뭔가 찾아봐야 합니다. 전성기 때는 머릿속에 있는 게 많아서 안 찾아보고도 썼는데, 지금은 한 줄 쓸 때마다 ‘이게 뭐였지?’ 하면서 검색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AI가 나오면서 저는 일을 시키기만 하면 되고 직접 코딩을 하지는 않으니까, 다시 전성기 때만큼의 퍼포먼스를 내고 있습니다. 좋은 세상이에요.”
현업에서 물러난 뒤 본 국내 게임업계에 대해서는, 유튜브로 접하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붉은사막’이 초반 평가가 갈렸다가 좋아진 소식 정도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고 했다.
상업성 계산에서 벗어난 첫 프로젝트
프로젝트에 손을 댄 계기를 묻자, 상업성과는 무관하게 오래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상업성 같은 걸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닙니다.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것들이거든요. 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상업성을 신경 써야 하잖아요. 수백 명이 거기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제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이게 과연 돈이 될 것인가를 계속 따지면서 개발 방향이나 개발 기간을 결정해야 합니다.
이건 어쨌든 제가 은퇴하고 집에서 취미로 하는 거니까요. 처음 시작한 게 1995년이라고 치면 30년이 된 셈인데, 그 30년 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AI의 도움으로 구현해 보는 겁니다. 그런 느낌의 프로젝트예요.”
30년 전 손코딩과 지금의 바이브코딩
30년 전의 개발과 지금의 차이를 묻자, 그는 레퍼런스의 유무를 갈랐다.
“30년 전에는 정말 한 줄 한 줄 다 짜야 했습니다. 그때는 인터넷도 아주 초창기였기 때문에 어디서 찾아보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만드는 장르가 MMORPG였는데, 그 장르 자체가 처음이라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게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울티마 온라인’이 97년에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여러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죠.
지금은 다릅니다. 물론 여전히 ‘신박’한 걸 만드는 게임도 있겠지만, 대략 정해져 있잖아요. 장르의 범주라는 게 있고, MMORPG라 하면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게 지난 30년 동안 업계에 충분히 쌓였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그런 것들을 그냥 구현하면 됩니다. 심지어 제가 열심히 안 하고 ‘이거 구현해라’라고 AI에게 시키면 되니까요. 그런 면에서 취미 생활로는 아주 적절한 것 같습니다.”
감독자가 된 개발자, 리뷰마저 AI에게 넘기다
감독자 역할을 한 셈이냐는 질문에, 그는 지난 1년 사이 자신의 개입 단계가 어떻게 줄었는지 설명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AI 직원이 있는 거고, 걔한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겁니다. 코딩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니까요.
그런데 1년 사이에 그것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LLM 발전이 워낙 빠르니까, 작년 8월까지만 해도 저는 작성된 코드를 일일이 읽고 리뷰를 했습니다. ‘이렇게 짜면 안 되지’ 하면서 고치라고 하고요. 마치 주니어 프로그래머한테 잔소리하듯이요.
그러다 작년 말, 올해 초부터는 그 리뷰조차 LLM이 워낙 똑똑해져서 AI한테 시키게 됐습니다. 저는 코드를 읽는 빈도가 더 줄어든 단계가 된 거죠. 그래도 아직 몇 가지 기능은 고생을 좀 했습니다.”
AI가 아직 약한 곳: 3차원 공간
가장 고생스러웠던 작업으로 그는 다층 건물과 물 렌더링을 꼽았다. 말로 하는 일은 잘하지만 3차원 세계에 대한 이해가 아직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예를 들어 게임 내 건물이 단층이 아니라는 점이요. 단층집은 30년 전 리니지 때도 있었습니다. 집 안에 들어가면 겉면이 안 그려지고 안이 보이는 식이죠. 그런데 2층집, 3층집은 없었거든요. 이번에는 그걸 만들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못 만들었는데 AI한테 ‘2층을 만들어줘’ 한마디 하면 되니까요.
계단을 놓으면 그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고, 3층도 올라가고요. (중략) 그런데 계단을 클릭해서 2층으로 올라가게 만드는 데 한참 걸렸어요. AI랑 많이 싸우면서, 말하자면 디버깅을 한참 오래 했습니다.
AI가 공간 개념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말로 하는 건 잘하는데 3차원 세계에 대한 이해는 아직 많이 떨어집니다. 1층에서 2층 가는 계단과 2층에서 3층 가는 계단이 겹쳐서 놓이는 문제 같은 게 계속 생겼어요. (중략) 보통은 한두 시간 만에 끝나는데, 이건 굉장히 많은 디버깅을 하고 결국 제가 코드를 일일이 다 읽어보고 왜 안 되는지 이해하는 데까지 내려가야 했습니다.”
바닷물 렌더링에도 몇 주가 걸렸다고 했다. 파도가 부서지며 하얀 포말이 생기고 밀려왔다 나가면서 모래가 젖는 표현, 이어 강을 만들고, 강과 바다가 만나 삼각주가 생기는 지점을 만드는 데 오래 붙들렸다.
“사실 게임 플레이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회사에서 했으면 ‘대표님, 그런 데 시간을 쏟으시면 안 되고, 이건 매출과도 상관없고’ 하는 이야기가 나왔겠죠. 그런데 이건 자기만족 프로젝트니까요. 그러다 페이블이라고 이달 1일부터 다시 쓸 수 있게 된 엄청 똑똑한 AI가 있는데, 그 친구한테 다시 짜라고 시켰습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부분이 되게 어색했거든요. 바다는 출렁거리는 게 있고 강은 흐르는 게 있는데 둘이 달라서 평면이 겹치면서 허접했는데, 페이블5(클로드 최상위 모델)가 이걸 딱 하나로 정리해 줬어요.”
ⓒINVEN
가장 눈여겨본 대목
내가 가장 오래 곱씹은 것은 ‘동등성’이라는 설계 선택이었다. 에이전트에게 편의를 위한 특권 API를 열어주는 대신, 인간과 똑같은 웹소켓 프로토콜만 쓰게 해서 서버가 둘을 구분하지 못하게 했다. 봇을 막는 방향이 아니라, 봇과 사람을 같은 규칙 위에 세우는 방향이다. AI 에이전트가 게임의 정식 참가자가 되는 세계를 설계 차원에서 미리 받아들인 선택으로 읽힌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개입 단계가 1년 만에 눈에 띄게 줄었다는 증언이다. 코드를 직접 쓰던 개발자가 리뷰어로, 다시 그 리뷰마저 AI에 맡기는 자리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다층 건물의 계단과 강, 바다가 만나는 지점처럼 3차원 공간이 얽히는 문제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코드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했다는 대목이, 지금 AI 코딩의 경계선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출처
이두현, 김수진 기자, 「[인터뷰] 송재경, AI와 게임」, 웹진 인벤, 2026년 7월 29일. 원문: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318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