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2026년 10월 22일, 일본 정부는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 대표이사 펠로를 2026년도(레이와 8년도) 문화훈장을 받을 인물로 선정했다. 게임과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문화훈장 수장자가 나온 것은 1937년 훈장 제정 이래 처음이다.
- 교토 닌텐도 본사에서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미야모토가 돌아본 자신의 일은 크게 두 가지다. 가족 모두가 거실에서 즐기는 쌍방향 미디어를 만드는 일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일이다. 아울러 닌텐도의 사훈 격인 ‘독창(独創)’ 정신과 고향 소노베의 자연 체험이 세계 시장에서 공감을 얻은 과정을 들려주었다.
- 생성형 AI의 발전을 두고 미야모토는 미완성인 부분을 채우고 마감하는 ‘작업하는 것(作業する)’과 전체 구성과 의도를 설계하는 ‘만드는 것(ものを作る)’을 구분했다. AI가 작업을 대신할수록 창작자들이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진단이다.
게임 분야 최초의 문화훈장과 첫인사
2026년 10월 22일, 일본 정부는 《동키콩》,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젤다의 전설》, 《피크민》 시리즈를 탄생시킨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대표이사 펠로를 레이와 8년도 문화훈장 수장자로 결정했다.1 미야모토는 2006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장, 2010년 영국 아카데미상(BAFTA) 펠로십을 받았고, 일본에서도 2019년 게임 업계 최초로 문화공로자에 선정된 바 있다. 이번 문화훈장 역시 게임 및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는 사상 첫 수장이다.
발표 당일 교토의 닌텐도 본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텔레비전과 신문 등 매체 기자 약 50명이 모였다. 첫인사에 나선 미야모토는 무척 쑥스럽다면서도 영예로운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는 소감을 먼저 건넸다. 게임이란 작가 한 사람이 홀로 완성하는 저작물이 될 수 없고 언제나 수많은 동료가 함께 모여 만들어 내는 산물이다. 이번 훈장 역시 그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을 대표해서 받는다는 마음으로 수락했다는 것이 그의 인사말이었다. 아울러 최근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USJ)의 테마파크 ‘슈퍼 닌텐도 월드’와 영화 《슈퍼 마리오》 시리즈처럼 게임 밖의 분야에서도 여러 전문가와 협업하고 있다며, 그들과 이 영예를 함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교토 닌텐도 본사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미야모토 시게루.
거실의 중심에 둔 게임기와 3세대의 일상
지난 50년 동안 사회에서 게임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미야모토는 어린 시절의 설날 풍경을 떠올렸다. 그가 어렸을 때는 닌텐도가 만든 가정용 보드게임인 《다이아몬드 게임》이나 《로켓 게임》, 《백인일수》를 일 년 내내 장롱 위에 올려 두었다가 설날이 되면 꺼내어 온 가족이 함께 놀았다. 미야모토는 비디오 게임을 만들게 된 뒤에도 가족이 쉬고 생활하는 거실 한가운데에 게임기가 늘 있기를 바랐다. 또 평소 게임을 즐겨 본 적이 없는 가족도 관심을 가질 만한 물건을 계속 만드는 것이 닌텐도다운 방식이라고 여겼다.
미야모토가 스물여섯에서 스물일곱 살 무렵 처음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주변 또래 가운데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게임을 하며 자란 아이들이 아버지가 되었고, 어느덧 미야모토 자신이 할아버지 세대가 되면서 조부모와 부모, 자녀에 이르는 3세대가 모두 게임을 아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세 세대가 같은 놀이를 알고 공유하게 된 세월의 두께야말로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게 만든 원동력이라는 해석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가장 큰 고비이자 전환점은 게임큐브에 이어 Wii를 개발하던 시기였다. 하드웨어 성능이 높아지고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컨트롤러는 점점 복잡해졌다. 학교나 일상 대화에서도 게임을 하는 사람을 ‘오타쿠’나 ‘게임 하는 사람’이라고 따로 불렀고, 게임을 하는 사람과 멀리하는 사람을 구별해서 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미야모토는 처음 만지는 사람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복잡한 컨트롤러를 아주 단순한 형태로 바꾸기로 했고, 그 산물이 Wii와 닌텐도 DS였다. 이후 스마트폰과 모바일 기기가 보급되면서 게임을 접하는 일은 더욱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쌍방향 미디어와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
평생 몰두해 온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할 때 미야모토는 게임이라는 단어 대신 ‘쌍방향(인터랙티브) 미디어’라는 표현을 썼다. 내가 무언가를 입력하면 상대 기기가 반응을 돌려주고, 그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새 즐거운 시간이 흘러가 있는 장치가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디어다.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눈에 비친 대표적인 장난감은 설계용 소프트웨어인 3D CAD다. CAD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컴퓨터 화면에서 이리저리 조작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그렇게 몰입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업무용 설계 프로그램 또한 훌륭한 장난감이자 게임이라는 시각이다.
이러한 쌍방향 미디어를 설계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가 사용자 인터페이스(UI)다. 미야모토가 보기에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여러 직군 가운데 게임 개발자만큼 사용 편의성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들은 없다. 고객이 화면을 보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지,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는지, 반응 속도는 적절한지, 어떻게 해야 오작동을 예방할 수 있는지를 인간공학적으로 끝까지 따지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평소 웹에서 쓰는 서비스 중에도 반응이 느린 서비스가 있습니다. 또 ‘예’나 ‘아니오’를 선택하는 질문에서, 대다수가 ‘예’를 누를 상황인데도 기본값이 ‘아니오’인 경우가 있지요. 그 바람에 많은 사람이 실수합니다. 싫지 않습니까(웃음). 게임 개발자들은 그런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곤두세워 디자인합니다.
닌텐도가 사내에 인터페이스 디자인 전담 부서까지 따로 두어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해 만든 서비스는 대체로 쓰기 불편하지만, 사용자가 실제로 편안하게 쓸 수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삼아 설계한 제품은 완성도가 다르다. 게임 개발 현장에서 단련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경험은 다른 컴퓨터 산업에서도 그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미야모토는 머지않은 장래에 게임이 오락이라는 범주에 그치는 대신 ‘컴퓨터의 쌍방향 문화’로 평가받기를 희망했다.

영화와 테마파크, 그리고 ‘독창’의 계승

기자회견장 벽면에 걸린 ‘임천(任天)’과 ‘독창(独創)’ 편액 아래에서 발언하는 미야모토 시게루.
전 세계 닌텐도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요청받자 미야모토는 과거 자신이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이유를 털어놓았다. 영화를 만들려면 줄거리를 짜야 하고, 캐릭터의 성격이나 가족 관계 같은 세부 설정을 고정해야 한다. 그러나 닌텐도의 캐릭터는 어디까지나 게임을 만들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설정을 미리 고정해 버리면 다음번에 전혀 새로운 규칙의 게임을 만들 때 제약이 생긴다고 우려했던 것이다.
생각이 바뀐 계기는 오랜 세월 동안 마리오와 젤다를 비롯한 닌텐도 캐릭터 자체를 사랑해 주는 팬들의 존재였다.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캐릭터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닌텐도의 팬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뒤, 그는 “만들 거라면 우리가 직접 만들자”고 결심해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USJ의 테마파크인 슈퍼 닌텐도 월드와, 스코플리 익스플로어(옛 나이앤틱)와 공동으로 개발해 서비스 중인 모바일 앱 《피크민 블룸》도 게임에서 탄생한 캐릭터를 더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만날 수 있게 하려는 시도다.2
이날 기자회견장 벽면에는 ‘임천(任天)’과 ‘독창(独創)’이라는 두 편액이 걸려 있었다. 미야모토는 남과 똑같은 일을 하면 소모적인 경쟁에 빠질 뿐이므로 “남과 다른 일을 한다”는 원칙을 늘 강조해 왔다. 문제는 조직의 규모다. 개발 인력만 3,000명에서 4,000명, 전 세계 임직원을 합치면 1만 명 안팎으로 불어난 지금의 닌텐도에서는 창업 초기의 ‘독창’ 정신을 전 직원에게 일일이 건네기가 쉽지 않다. 이에 미야모토는 예전에 신입이라 여겼던 직원들이 어느덧 중견으로 성장한 점에 주목해, 차기작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견 개발자들이 모여 “독창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토론하는 모임을 조금씩 꾸리고 있다.

고향 소노베의 자연과 교토에서 일한다는 것

‘독창’ 편액 아래에서 활짝 웃으며 고향과 교토 시절을 이야기하는 미야모토 시게루.
교토신문 기자가 고향인 소노베(현 교토부 난탄시)와 현재 일하는 교토라는 도시에 대해 묻자, 미야모토는 자신이 교토 시내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시골 마을 소노베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할 무렵 주변에서는 “산업 디자인을 하려면 이탈리아로 가야 한다”, “최신 디자인은 뉴욕에 있다”고 말했고, 서른 살이 넘자 “첨단 도시에 있지 않으면 디자이너로서 감각이 마른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교토에 취직해 자기 속도대로 묵묵히 게임을 만들었다.
서른 살 무렵부터 내놓은 작품들은 일본 국내보다 해외 시장에서 훨씬 큰 판매고를 올렸다. 마흔 살 가까이 되었을 때는 “왜 당신 작품은 세계적으로 통하는가”라는 질문도 자주 받았다. 그러면서 교토에 남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유행과 경쟁에 휩쓸리는 대신 자기 도구를 들고 한곳에 차분히 앉아, 국적이나 도시 거주 여부와 상관없는 보편적인 ‘사람’을 상대로 물건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야모토는 이를 두고 “가장 로컬한 것은 자기 자신이며, 그 초(超)로컬한 관점을 지킨 채 꾸준히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교토라는 도시 환경 덕분이었다”고 표현했다.
고향 소노베의 자연도 같은 방식으로 그의 작품에 반영됐다. 소노베의 특정 풍경을 그대로 본떠 게임을 만들었다기보다, 어린 시절 산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내려오고 강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손으로 잡던 신체 감각이 몸에 배어 창작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뜻이다. 나라가 달라도 아이들이 사물에서 물리적 자극을 받고 생각하는 방식은 같기 때문에, 몸에 밴 체험을 게임 속에 자연스럽게 재현한 것이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그대로 통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아울러 지난 20여 년 사이에 디지털 업계 내부의 위계가 사라진 경험도 함께 언급됐다. 초기 무역 박람회에서 게임은 컴퓨터가 아닌 가전제품 분류에 속했다. 컴퓨터 분야와 같은 분류에 포함된 뒤에도, IBM을 중심으로 한 컴퓨터 업계 사람들은 게임 업계를 자신들보다 낮게 평가하는 태도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 게임을 하며 자란 2세대와 3세대가 컴퓨터 기업의 임원진에 포진하면서 상하 의식은 완전히 사라졌고, 어느 지역에 있든 디지털 도구를 다루는 재미있는 동료라는 유대감이 형성됐다.

생성형 AI 시대에 묻는 ‘작업하는 것’과 ‘만드는 것’
생성형 AI가 발전하면서 제작이 쉬워진 지금, 인간 창작자의 역할과 게임 문화를 어떻게 보는지 묻는 질문이 나왔다. 미야모토는 타자기 대신 워드프로세서와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던 시절의 경험부터 이야기했다. 과거에는 포스터 글씨를 깨끗하게 그리는 레터링 기술만 익혀도, 혹은 해외에서 유행하는 디자인을 일본어로 바꿔 배치하기만 해도 디자이너로 불릴 수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가 글과 그림을 제공하고 글씨를 매끈하게 그려 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술적인 숙련도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개인의 레이아웃 감각과 고유한 디자인 능력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구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던 이러한 변화가 지금 AI를 통해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미야모토의 시각이다.
이어서 그는 창작 과정을 ‘만드는 것(ものを作る)’과 ‘작업하는 것(作業する)’ 두 가지로 엄격히 구분했다.
| 구분 | 미야모토 시게루의 정의 | 창작자가 겪는 함정과 AI의 역할 |
|---|---|---|
| 만드는 것 | 무엇을 만들려는지 자신만의 의도를 정하고 작품의 전반적인 구성을 설계하는 일 | 도구가 고도화될수록 개인의 설계 의도와 감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
| 작업하는 것 | 전반적인 구성이 정해진 뒤 미완성인 부분을 완성하거나 세부를 마감하는 일 | 작업 자체가 즐겁고 성취감을 주다 보니, 작업만 마치고도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AI가 이 작업을 대신할수록 ‘만드는 것’의 본질을 고민하게 된다 |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면 먼저 큰 구성을 짭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 하지요. 그다음부터는 작업입니다. 비어 있는 구멍을 메운다거나 깨끗하게 마감하는 일 말입니다. 문제는 이 작업이 참 즐겁다는 점입니다. 무언가를 엄청나게 만들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기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무서운 것은 그 작업에 만족해 버려서 ‘꽤 좋은 물건이 나왔다’고 착각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AI가 여러 작업을 대신해 주게 될수록 ‘무엇이 진정으로 만드는 일인가’를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니 무척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도 남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서 만든 제작물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시간을 견디는 작품을 만들려면 창작자 개인이 분명한 의도를 정해 디자인을 주도하고 컴퓨터에게는 필요한 작업을 거들게 해야 하며, 앞으로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해야 할 몫은 여전히 많다는 결론이다.

닌텐도 DS를 개발하던 시절에 이 기기를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컴퓨터’로 삼아 벌였던 실험들도 함께 거론됐다. 당시 닌텐도는 샤프와 손잡고 교사용 PC와 학생들의 DS를 연동한 수업 지원 시스템 《닌텐도 DS 교실》을 제작했다. 또 미술대학 졸업전시회를 위해 웹 브라우저에서 설계할 수 있는 음성과 이미지 안내 시스템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이후 발전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공식 가이드 기기가 되었다.3 당시 그는 절반은 게임을 만들고 절반은 ‘이것을 게임이라 불러도 좋을까’ 싶은 물건을 만들었는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그 흐름이 단숨에 대중화됐다. 지금은 아마추어도 개발 도구를 써서 닌텐도 스위치용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누군가 만든 제작물을 한 시간 동안 즐겁게 체험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게임이라 부를 수 있다며, 미야모토는 게임과 일상 도구의 구분이 사라진 지금의 환경을 반겼다.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게임이란 무엇인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게임의 정의를 설명하는 미야모토 시게루.
미야모토에게 게임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기가 만든 것으로 남을 놀라게 하는 일을 무척 좋아했다고 답했다. 중학생 때는 만화가를 꿈꾸며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다. 또 부모님이 허락 없이 자기 방에 들어오자, 문을 열면 유령의 집처럼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를 꾸며 놓았다. 그는 부모님이 화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곤 했다. 산업 디자인을 공부한 뒤에도 테이블 위에서 왜 작동하는지 알 수 없는데 계속 돌아가는 신기한 물건을 만들고 싶어 했다.
게임 개발 초기에 라이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루빅 큐브를 발명한 에르뇌 루빅 박사를 꼽았다. 산업 디자이너에게 루빅 큐브는 동경의 대상이자 걸작 장난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오락실(아케이드) 게임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돈을 넣는지 알게 되면서였다. 플레이어는 사행심 때문이라기보다, 자기가 조작해서 실패한 결과가 분하고 아쉬워서 다시 동전을 넣는다. 처음에는 그 구조에 매료됐던 그는 점차 돈을 받는 일보다 ‘사람들은 왜 한 번 더 해 보고 싶어 하는가’라는 순수한 질문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세계 속에 직접 들어가 있는 듯한 감각을 주려고 고안한 것이 이른바 상자정원(箱庭) 게임이다. 상자정원을 설계할 때도 주변 이야기는 함께 준비하지만, 개발자가 직접 이야기꾼으로 나서는 대신 플레이어가 안에서 놀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려 내도록 유도하는 데 주력했다. 개발자로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순간 역시 자기가 만든 작품을 가지고 즐겁게 노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다. 미야모토는 영화 대사 한 줄의 길이가 적절한지, 게임을 조작할 때의 촉감(触り心地)이 기분 좋은지를 끊임없이 상상하며 작품을 만든다. 완성된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말할지는 온전히 관객과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 둔다.

쿠파와의 대결을 생략한 발명과 후배들에게 남기는 조언

1985년 출시된 패미컴용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화면.
‘마리오의 아버지’로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탄생 비화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미야모토는 게임의 승리 조건을 화면만으로 이해시키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팩맨》은 미로의 점을 모두 먹으면 끝나고, 《테트리스》에서는 블록으로 가로 한 줄을 채우면 그 줄이 사라지므로 누가 보아도 목표가 자명하다. 반면 그가 만든 《동키콩》은 캐릭터가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이동해야 이긴다는 규칙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가 어려워, 고릴라가 여성을 납치해 도망가고 플레이어가 그 뒤를 쫓아가는 구도를 도입해야 했다.
당시 기술로는 화면 스크롤이 불가능했지만, 그는 언젠가 화면이 옆으로 계속 이어지고 마리오가 점프하며 끝없이 달리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어린 시절 기차를 타면 창밖 풍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서 사람이 달리다가 점프했다”, “강물에 빠졌다”고 상상하던 놀이를 게임으로 구현한 것이다. 땅을 달리고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을 나는 ‘육해공(陸・海・空)’ 액션을 한데 모은 끝에 버섯 왕국이라는 세계관이 남았다.
미야모토가 꼽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최대의 발명은 마지막까지 달려가서도 보스인 쿠파와 싸우는 대신 머리 위로 점프해 지나가는 것이었다.
보통 이야기를 구상하면 계속 앞으로 나아갔을 때 마지막 목표 지점에 보스가 있으니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전투를 만드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이대로는 전투를 못 만들겠는데’ 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계속 오른쪽으로 달리는 게임이니까 맨 오른쪽 끝에 도착하면 이기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다면 싸우지 말고 보스 위로 점프해 지나가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2편과 3편을 만들면서는 점차 보스와 제대로 싸우는 방식을 넣었지만, 1편의 막막함을 해결한 돌파구는 보스전을 생략하고 오른쪽 끝의 도끼를 향해 점프하게 한 발상이었다.

젊은 게임 창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가짐으로 미야모토는 “플레이어는 놀면서 머리를 써서 생각한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았다. 쌍방향 미디어의 재미는 사용자가 ‘다음에 이렇게 해 보면 어떻게 될까’를 궁리해 시도했을 때 돌아오는 응답에 있으며, 그 응답을 돌려주는 방식에 창작자의 개성이 담긴다. 아울러 특정 게임의 열성 팬으로서 “이 게임은 재미있는데 여기만 이렇게 고치면 더 재미있어질 텐데”라는 생각으로 개발을 시작하는 방식은 피하라는 조언도 건넸다. 자기가 고치고 싶은 부분을 수정하려면 먼저 기존 게임을 똑같이 재현하는 데 모든 노력을 들여야 하고, 애써 만들어 보았자 남이 만든 작품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남의 작품을 개조하기보다 “이런 것을 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자기만의 첫 착상에서 출발해 구체화해 나가는 편이 훨씬 즐겁고 보람찬 일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기자회견 말미에 미야모토는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 다섯 명을 언급하며 선구자 세대의 책임을 이야기했다.
| 인물 | 관계 및 대표 이력 | 미야모토 시게루가 배운 점 |
|---|---|---|
| 요코이 군페이 | 닌텐도 개발자 (울트라 핸드, 게임보이 개발, 1997년 별세) | 눈앞에 있는 대상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지 끝까지 파고드는 태도 |
| 야마우치 히로시 | 전 닌텐도 사장 (닌텐도를 세계적인 게임 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 2013년 별세) | “너희는 싸움에 약하니 남과 싸우지 말고 독자적인 일을 하라”는 말로 일깨워 준 ‘독창(独創)’의 정신 |
| 이토이 시게사토 | 카피라이터, 《MOTHER》 시리즈 기획자 | 최신 유행을 잘 알면서도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신이 맡은 일을 꾸준히 해 나가는 자세 |
| 데즈카 오사무, 아카츠카 후지오 | 일본 만화계의 거장 | 새로운 미디어를 처음 만든 세대가 말년에 스스로 그 미디어를 과감히 바꿔야 후배 세대가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교훈 |
원래 만화가를 꿈꾸었던 미야모토는 만화라는 미디어를 개척한 데즈카 오사무와 아카츠카 후지오가 말년에 자신의 매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자주 생각한다고 했다. 그 미디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먼저 바꾸지 않으면, 후배들이 변화를 시도하려 할 때 무척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세대인 자신들부터 적극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뒤따라오는 후배들이 한결 일하기 쉬워진다는 다짐으로 이날 기자회견은 마무리됐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
이번 기자회견 전문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생성형 AI 시대의 ‘작업’과 ‘만들기’에 관한 진단이었다. 특히 이 진단은 40년 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쿠파와의 전투를 생략했던 일화와도 서로 통했다. 미야모토는 큰 구조와 의도를 설계하는 일을 ‘만드는 것’이라 부르고, 미완성인 부분을 메우고 매끈하게 마감하는 일을 ‘작업하는 것’이라 불렀다. 만약 1985년의 미야모토가 ‘마지막 관문에는 당연히 정교한 보스전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여 전투를 구현하는 작업에만 집중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경쾌한 리듬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오른쪽 끝까지 달려가는 게임’이라는 큰 설계 의도를 다시 떠올려, 보스 머리 위로 점프해 도끼를 건드리는 해결책을 골랐다.
젊은 창작자들에게 “남이 만든 게임의 아쉬운 부분만 고치겠다는 출발을 피하라”고 한 조언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기존 작품의 빈칸을 메우고 매끈하게 고치는 일은 미야모토의 기준에서 ‘작업’에 해당한다. 생성형 AI가 코드 작성과 그래픽 마감, 변주 같은 작업을 빠르게 대신할수록, 설계자는 “이 게임은 왜 오른쪽으로 달리는가”, “내가 만들고 싶은 첫 착상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무엇을 만들려는지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한다.

출처
- 堅田ヒカル, 北埜トゥーン, 世界三大三代川, 「任天堂・宮本茂氏の文化勲章受章が決定。『マリオ』『ゼルダ』『ピクミン』の生みの親。「“作る”とは何なのか。AIの発展でみんなが考える」。記者会見で語られた歩みと哲学」, ファミ通.com (패미통), 2026년 10월 23일.
- 원문: https://www.famitsu.com/article/202610/91818
- 기자회견 사진과 게임 화면은 모두 원문 기사에서 인용했다. 치비 서소영 삽화 여덟 장은 「느낌적인 느낌을 숫자로 옮기는 일」의 치비 서소영 라인아트를 참조해 gpt-image-2.5-flare로 따로 생성했다.
문화훈장(文化勲章)은 1937년 제정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화 훈장으로, 예술과 학문,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본 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한 인물에게 수여한다. 매년 가을에는 문화훈장을 받을 인물을 발표한다. 문화의 날인 11월 3일에는 황거(皇居)에서 천황이 직접 훈장을 수여하는 친수식을 연다. 그동안 영화계의 구로사와 아키라와 야마다 요지 감독, 문학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시바 료타로, 만화계의 치바 테츠야(2024년) 등이 수장했으며, 게임 및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수장자가 나온 것은 미야모토 시게루가 처음이다. ↩︎
《피크민 블룸(Pikmin Bloom)》은 2021년 11월 닌텐도와 나이앤틱(Niantic)이 공동 개발해 출시한 스마트폰용 걸음 수 및 GPS 연동 게임이다. 이후 나이앤틱의 게임 사업부가 스코플리(Scopely)에 인수되면서 현재는 스코플리 익스플로어(Scopely Explore)가 배급과 운영을 맡고 있다. ↩︎
《닌텐도 DS 교실(ニンテンドーDS教室)》은 2009년 닌텐도와 샤프시스템프로덕트가 공동 개발한 학교 수업 지원 시스템이다. 교사용 PC와 학생들의 닌텐도 DS를 무선으로 연결해 교사가 학생 각자의 답안 작성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게 설계됐다. 루브르 박물관이 2012년에 도입한 공식 오디오 가이드는 미술대학 전시 안내용으로 개발한 시스템을 발전시킨 것이다. 관람객이 닌텐도 3DS 기기를 들고 작품 앞에 서면, 관람 동선에 맞춰 음성 해설과 고화질 이미지를 자동으로 재생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