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1. Marion Stokes(1929~2012)는 필라델피아의 흑인 사서·시민운동가로, 1979년 이란 인질 사건 보도가 시간대마다 슬그머니 바뀌는 것을 보고 33년간 TV 뉴스를 24시간 녹화하기 시작했다.
  2. 마지막 녹화는 임종일이었던 2012년 12월 14일 Sandy Hook 학살 보도였다. 남긴 비디오테이프는 71,716개. 비용은 애플 초창기 주식에 투자한 자산으로 충당했다.
  3. 사후 아들 Michael Metelits가 Internet Archive에 전량 기증했고, 80~2000년대 미국 정치·사회·문화 원본 뉴스 영상이 — 방송국조차 갖고 있지 않은 — 디지털화 진행 중이다. 2025년 현재 자금 부족으로 작업은 일부만 완료된 상태다.

Marion Stokes(1929\~2012)의 청년기 인물 사진. Marion Stokes(1929\~2012). 흑인 여성 사서·사회운동가이자, 한때 공산당 활동가였고, 후에는 한 시대의 TV 뉴스 전체를 자기 거실에 옮긴 비공식 아카이비스트. — 출처: Recorder: The Marion Stokes Project (Matt Wolf, 2019)

발단 — 1979년 이란 인질 사건

스토리의 출발점은 X 트윗 한 장이었다.

이분이 없었다면 과거 TV 자료는 없었다. 1979년 이란 인질 사건 때 언론들이 입맛대로 보도하고 슬그머니 영상 지우는 거 보고 충격받은 사서 Marion Stokes임. 권력자들이 역사 왜곡하는 거 막겠다고 그때부터 2012년 숨 거두는 순간까지 33년간 24시간 내내 TV 뉴스를 녹화해 버림.

@lucifer5670

너무 픽션 같아서 영문 자료들을 추가로 찾아보니, 트윗의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CNN(2013)이 초기 보도에서 140,000개의 테이프라고 했으나, Internet Archive가 실측한 정본 수치는 71,716개 / 12,094일 / 약 840,000시간이다(Internet Archive Blog, 2019).

녹화 시작 시점은 자료마다 약간씩 다르다. Wikipedia와 Open Culture는 1979년 11월 (이란 인질 사건 발발 직후), CNN과 Salon은 1977년부터 산발적 녹화를 시작했다고 적는다. 정리하면: 1977년 베타맥스를 사 가벼운 녹화를 시작했고, 1979년 이란 인질 사건을 계기로 24/7 체제로 전환했다가 가장 정확하다.

인물 — 사서·시민운동가·공산주의자·애플 투자자

자료를 종합하면, Stokes는 어느 한 단어로 묶기 어려운 인물이다.

정체성상세
사서Free Library of Philadelphia에서 거의 20년간 근무 (1940년대~1960년대 초). 정치 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것으로 추정됨.
공영방송 제작자1967~1971년 WCAU-TV10에서 ‘Input’이라는 토론 프로그램을 남편 John Stokes Jr.와 공동 제작·진행.
시민운동가1963년 워싱턴 행진에 참가할 버스를 조직. FBI 사찰 대상.
공산주의자첫 남편 Melvin Metelits와 함께 공산당 활동. 한때 쿠바 망명 시도.
흑인 여성흑인 사회의 미디어 표상에 깊은 분노를 갖고 있었음.
애플 초기 투자자애플 주식 매수로 큰 자산 형성. 192대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수집한 잡스 추종자.
호더(hoarder)9개 아파트를 임대해 테이프 보관용으로 사용. 약 50,000권의 책과 무수한 신문·잡지도 보관.

다큐멘터리 ‘Recorder’를 본 Variety의 Owen Gleiberman은 Stokes를 “Noam Chomsky와 카우치 포테이토 뉴스 중독자의 기괴한 혼종"이라고 평했다(Variety, 2019).

1967\~1971년 WCAU-TV10의 'Input' 출연 시절의 Marion. 1967\~1971년 WCAU-TV10의 공영 토론 프로그램 'Input' 출연 시절의 Marion. 매체의 휘발성을 누구보다 잘 안 사람은, 한때 자신이 매체의 안쪽에 있던 사람이었다. — 출처: 다큐멘터리 'Recorder'(2019)

방법론 — 최대 8대 VCR, 6시간마다 테이프 교체

녹화 시스템 자체가 거대한 사적 기간시설이었다.

  • 장비: 최대 8대의 VCR을 동시 가동, 채널마다 한 대씩 할당.
  • 테이프: 6시간(Extended Play) 또는 8시간짜리 VHS·베타맥스 카세트.
  • 운영: 6시간마다 가족·비서·간호사가 교대로 테이프를 교체.
  • 이동: 가족 외출도 테이프 길이에 맞춰 계획. 후기에는 외출했다가도 교체 시간이 되면 집으로 뛰어 돌아왔다.
  • 포맷 거부: TiVo·DVR을 거부함. “정부가 자신이 무엇을 녹화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 (Hollywood Reporter, 2019). 이메일도 평생 한 번도 보내지 않았다.

잡지 더미 옆에 TV와 베타맥스 녹화기가 놓인 1970년대 거실 재현 컷. 70년대 거실의 한 풍경 — 잡지 더미 옆에 TV와 베타맥스 녹화기가 놓인 시대. Stokes는 1975년경 베타맥스를 사면서 이 시스템을 자기 집 거실에서 시작했다. — 출처: 다큐멘터리 'Recorder'(2019)

1979년부터 2012년까지 — 그녀가 남긴 비디오테이프 더미. 1979년부터 2012년까지, 다중 채널·주야 무휴로 쌓인 70,000여 개의 VHS. — 출처: Recorder: The Marion Stokes Project

녹화 채널은 시대마다 달라졌다. 초기에는 지역 방송과 네트워크 뉴스가 중심이었고, 케이블이 24시간 뉴스 시대를 열면서부터는 Fox, MSNBC, CNN, C-SPAN, CNBC를 동시에 잡았다. 보스턴과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살던 시기(1980년대)에는 보스턴 강제 통학(busing) 사태도 함께 기록됐다.

마지막 녹화 — 2012년 12월 14일

Stokes는 83세에 폐 질환으로 사망했다. 그날의 녹화 분에는 Sandy Hook 초등학교 학살 보도가 담겨 있었다. 시작과 끝이 모두 비극적 뉴스 사건과 겹친 것은 우연이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그 우연이 그녀의 33년을 압축하는 장면으로 쓰인다.

사후 — Internet Archive 기증과 디지털화

항목내용
기증 결정유언장에는 테이프 처분 지침 없음. 아들 Michael Metelits에게 “원하는 자선단체에 기증” 위임.
수신처 선정약 1년간 후보를 검토한 끝에 San Francisco의 Internet Archive(비영리)로 결정.
이송4개 해상 컨테이너에 나눠 캘리포니아로 운송. 이송 비용 약 $16,000은 그녀의 유산에서 지출.
수신 시점2013~2014년 겨울. Internet Archive가 받은 최대 규모의 단일 기증품.
디지털화 비용카세트당 약 $10\~25. 전체 추산 약 $2,000,000.
장비약 20대의 디지타이저, 자원봉사자 24시간 운영.
2025년 현재자금 부족으로 작업은 일부만 완료. 일부는 캘리포니아 Richmond의 온도 조절 창고에 대기 중.

함께 기증된 부속 자료도 방대하다. 55개의 뱅커스 박스에 담긴 1960년 이후의 개인 일기, 잡지, 신문, 시민단체 팸플릿, 전단지 — 이미 일부는 디지털화돼 Internet Archive의 Marion Stokes Collection에서 열람 가능하다.

Richmond 창고의 한 코너에 빼곡히 쌓인 카세트 박스 더미. Richmond 창고에 도착해 펼쳐 놓이기 전, 한 코너에 쌓여 있던 카세트 박스 더미. — 출처: All That's Interesting

2014년 사전 분류 전, Richmond 창고에 펼쳐진 Marion Stokes 비디오 아카이브 전경.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Internet Archive의 Sean Fagan이다. 4개 해상 컨테이너에 나눠 실려 캘리포니아 Richmond 창고에 도착한 박스들. 가운데 선 사람은 Internet Archive의 Sean Fagan이다. 71,716개의 테이프는 이 정도의 부피를 차지한다. — 사진: Brett Brownell / Internet Archive

왜 가치 있는가 — 방송국조차 갖고 있지 않은 원본

당시 방송국들은 비용을 아끼려고 옛 뉴스 테이프를 지우고 재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80~90년대 미국 지역 뉴스 원본은 — 역설적으로 — 방송국이 아니라 한 사서의 거실에 남았다.

Internet Archive의 TV 아카이브 책임자 Roger Macdonald가 Salon 인터뷰에서 한 말이 핵심을 짚는다.

텔레비전은 우리 시대의 가장 만연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매체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경험을 일시정지하고 되감아 다시 볼 수단을 가져본 적이 없다. 비교하고 대조하고 지식을 캐낼 수 없었다.

— Roger Macdonald, Salon, 2013

Stokes가 남긴 것은 단순한 뉴스 보관소가 아니다. 같은 사건이 시간대별로, 채널별로 어떻게 다르게 재구성되는지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메타-아카이브다. 80년대 MOVE 폭격, 90년대 LA 폭동, 9·11, 카트리나, 오바마 당선까지 — 모두 여러 채널의 다중 시점 원본 영상으로 비교 가능하다.

다큐멘터리 ‘Recorder: The Marion Stokes Project’ (2019)

항목정보
감독Matt Wolf
프리미어2019 Tribeca Film Festival
러닝타임87분
시청Kanopy 스트리밍, DVD (Free Library of Philadelphia 등)

리뷰의 결을 짧게 정리하면:

  • IndieWire (Kate Erbland): “강박이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 인물의 기괴함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통찰을 존중한다.
  • Roger Ebert.com: “사서는 한 번 사서이면 평생 사서다. 사서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 사람들이 정보를 찾을 수 있게 길을 트는 것.”
  • Variety (Owen Gleiberman): 그녀의 행위를 미화하는 다큐의 결에 비판적 거리. “뉴스의 부정확함에 강박적이었던 그녀조차 뉴스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점이 진짜 함의다.”
  • Boston Globe: “VCR을 자기 삶으로 착각한 여자"라는 부제목이 더 적절했을 것이라고 평하면서도, 다큐가 그녀의 복잡함을 잘 담았다고 인정.
  • Hollywood Reporter: “뉴스 중독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훨씬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는 영화.”

가장 흥미로운 지점

자료를 종합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녀가 미디어의 양면을 한 인물 안에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Stokes는 1967~1971년 ‘Input’이라는 토론 프로그램의 제작자·진행자였다. 즉 그녀는 카메라 안쪽에 서서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었다가, 카메라 바깥에서 뉴스가 지워지는 것을 지키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자기 자신이 한때 매체의 운영 원리를 알았기 때문에 매체의 휘발성도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그 자각이 — 어쩌면 강박과 결합하여 — 33년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또 하나 짚어둘 만한 것은 다큐가 그녀를 영웅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아들과 오래 절연했고, 두 번째 남편을 그의 자식들로부터 떼어 놓았다. 그녀의 행위는 인류 유산에 기여했지만, 그녀의 가족에게는 부재의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의 아들 Michael Metelits와 Marion Stokes. 젊은 시절의 Marion과 어린 아들 Michael Metelits. 어머니가 33년간 녹화한 71,716개의 테이프를 사후 Internet Archive에 기증한 사람이 바로 이 아이다 — 어머니와 오랜 절연을 거쳐, 말년에 다시 가까워진 뒤에. — 출처: All That's Interesting / 가족 제공

Roger Ebert.com 리뷰가 짚듯이, 호더와 컬렉터의 경계는 다른 사람들이 그 모음에 부여하는 가치에 있을 뿐이다. Stokes의 71,716개 테이프는 — 사후에 —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 가치가 그 33년이 가족에게 정당했음을 자동으로 함의하지는 않는다.

다큐가 답을 하지 않고 남겨두는 질문도 묵직하다. 시간당 들이는 노력이 그렇게 큰데, 누가 보든 보지 않든 — 권력자가 역사를 지우는 것을 한 사람의 사적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정말로 믿었을까? 아니면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견디기 위한 의식(ritual)이었을까? 둘 다 답일 수 있다.

출처

발단 트윗: @lucifer5670 (2026)

주요 자료:

다큐멘터리 리뷰:

컬렉션 열람: Marion Stokes Collection at Internet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