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KDI(한국개발연구원)가 2010년 이전 서울의 고교 평준화 정책(학군 내 무작위 배정)을 자연실험으로 활용하여, 학교 교육의 질적 차이가 학생 성취에 미치는 인과적 효과를 식별한 연구다.
- 학업성취도 상위 학교에 배정된 학생은 수능 점수가 3.8~4.7점 높았으나, 이 효과는 기존 성취 상위 50% 학생에게 집중되며 하위 50%는 거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 교사의 역량과 학교 풍토가 학교 효과의 핵심 동인이며, 교원 수·시설 면적 같은 양적 투입은 유의하지 않았다.
연구 배경: 돈을 쏟아도 성적이 떨어진다
[그림 1] 공교육비는 2.5배 늘었지만, 수학 ‘보통 이상’ 비율은 85.2%에서 55.9%로 급락했다.
한국의 1인당 공교육비는 2013~2022년 사이 약 2.5배 증가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고2 수학 ‘보통학력 이상’ 비율은 85.2%에서 55.9%로 떨어졌다. 투입은 늘었는데 성과는 줄어드는 역설이다.
이 역설의 원인을 파악하려면 “학교 간 성취도 차이"가 학교 교육의 질적 차이(학교 효과)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어떤 학생이 그 학교에 다니느냐(학생 구성 효과)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분리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교육 시스템에서 학교 선택과 학생 특성이 뒤엉켜 있어, 순수한 학교 효과를 식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분석 설계: 평준화 정책이라는 자연실험
2010년 이전 서울의 고교 평준화 정책은 학군 내 학생을 무작위로 고등학교에 배정했다. 이 무작위 배정 덕분에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기존 학력과 무관하게 어떤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지가 결정된다. 이를 자연실험으로 활용하면 선발 편향 없이 순수한 학교 효과를 추정할 수 있다.
[그림 2] 평준화 정책 하에서도 학교 간 성취도 편차는 상당히 크다.
연구는 한국교육종단연구 2005년 코호트 데이터와 2010년 서울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연계하여 분석했다. 핵심 식별 전략은 다음과 같다:
- 지리적으로 인접한 학교들을 K-means 클러스터링으로 ‘미니 학군’으로 묶는다
- 각 미니 학군 내에서 학교를 학업성취도 상위 50%(A그룹)과 하위 50%(B그룹)으로 분류한다
- 사회경제적 배경 변수를 통제한 후, A그룹과 B그룹에 배정된 학생들의 입학 전 학력 차이를 확인한다
[그림 4] 통제변수 추가 후 A/B 그룹 간 입학 전 학력 차이가 0에 수렴하여, 무작위 배정 가정의 유효성을 확인했다.
통제 후 입학 전 학력 차이가 0에 수렴한다는 것은, A그룹과 B그룹의 학생 구성이 사실상 동일하다는 뜻이다. 이후 관찰되는 차이는 순수한 학교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핵심 발견 1: 좋은 학교의 효과는 실재한다
A그룹 학교에 배정된 학생은 B그룹 대비:
- 수능 표준점수가 전 과목에서 3.8~4.7점 높음
- 고1 학업성취도 ‘보통 이상’ 확률이 3.1~3.3%p 증가
학교 교육의 질적 차이가 학업성취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확인되었다.
핵심 발견 2: 혜택은 상위권에 집중된다
가장 주목할 발견은 이질적 효과(heterogeneous effects)다. 학교 효과를 기존 학업성취 수준별로 분해하면:
- 상위 50% 학생: 수리 과목에서 8점 이상 향상. 뚜렷한 혜택
- 하위 50% 학생: 유의한 차이 없음
좋은 학교의 효과는 실재하지만, 이미 잘하는 학생에게 집중된다. 하위 학생은 좋은 학교에 가더라도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연구진은 학교들이 입시 성과 극대화를 위해 상위권 학생에게 자원을 집중 투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핵심 발견 3: 비학력 변수에는 효과가 없다
가치관, 자기개념, 비인지 역량, 시민의식, 대학 적응도 등 비학력 변수에서는 A그룹과 B그룹 간 유의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학교의 질적 차이는 학업성취에는 인과적으로 영향을 주지만, 학생의 전인적 발달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학교가 시험 점수 외의 영역에서는 차별화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 좋은 학교를 만드는가
A그룹과 B그룹 학교의 특성을 비교하면, 차이를 만드는 것과 만들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게 갈린다.
유의한 차이가 있는 요소:
- 교사의 열의와 전문성 (“본받을 점이 있는 교사”)
- 낮은 비동조적 행위 (결석·지각 감소)
- 엄격한 교칙 유지
유의한 차이가 없는 요소:
- 교원 1인당 학생 수
- 정규직 교사 비율
- 학교 대지 면적
교사를 더 많이 배치하거나 시설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생에게 열정을 보여주고, 학교가 규율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양적 투입이 아닌 질적 문화가 학교를 좋게 만든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
이 연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착시 효과’의 발견이다. 좋은 학교의 전체 평균 효과(3.8~4.7점)는 실재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위 학생에게 효과가 집중되어 있고 하위 학생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공교육비를 2.5배 늘려도 성취도가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학교는 ‘잘하는 학생을 더 잘하게 만드는 데’ 최적화되어 있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교육 정책의 방향이 “얼마나 투입하느냐"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투입하느냐"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데이터가 명확하게 보여준다.
출처
최규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KDI 정책연구시리즈 2025-08, 2025년 12월 ISBN: 979-11-758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