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이승환 경기연구원 AI연구실장이 ‘AI 시그널’ 16화로 정리한 글로, 중국을 중심으로 폭발 성장 중인 1~3분 세로형 마이크로 드라마와 AI 공장형 제작 구조를 다룬다.
- AI 도입으로 제작 기간 15~30일이 5일 이내로, 비용은 5분의 1로 떨어졌고 1년 만에 인기 드라마 차트 100위권 점유율이 7%에서 38%로 치솟았다.
- 콘텐츠 산업의 권력 구조·노동·권리가 모두 재편되는 가운데, AI 공장을 배제할 것인가 흡수할 것인가가 K드라마를 포함한 각국 콘텐츠 산업의 생존 변수로 남는다.
중국식 AI 드라마 공장의 부상
마이크로 드라마는 스마트폰 세로 화면에 맞춘 1~3분짜리 초단편 연속극이다. 코로나19 시기 인기를 얻기 시작해 이제는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 수익의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로 자리잡았다.
시장의 특징은 두 가지다.
- 제작 단가의 극단적 하락: 전통 방식으로 15~30일 걸리던 숏드라마 제작이 AI 도입 후 5일 이내로 줄었고, 비용은 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부 제작사는 분당 30달러(약 4만 원) 수준의 비용을 주장한다.
- 공장형 생산 규모: 중국에서는 하루 500편, 한 달 수만 편 단위로 AI 마이크로 드라마가 생성된다. 2026년 1월 한 달에만 하루 평균 470편 이상이 공개됐고, 3월에는 더우인 한 플랫폼에만 AI 제작 콘텐츠 5만여 편이 추가됐다.
인기 드라마 차트 100위권에서 AI 마이크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전 7%에서 38%로 다섯 배 가까이 치솟았다. 시청자 수용의 임계점을 이미 넘어선 수치다.
텍스트에서 완성 드라마까지 — 4단계 파이프라인
AI 마이크로 드라마 생산은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 스토리·각본 생성 — 거대언어모델(LLM)이 인기 소설·웹소설·만화를 분석해 1~2분 단위 에피소드 구조를 자동 설계한다.
- 영상 합성·캐릭터 생성 — 텍스트를 기반으로 인물·배경·카메라 워크까지 자동 생성한다. 실제 배우 촬영 없이 전편을 생성하는 프로젝트도 등장했으며, 제작비 65만 원·제작 시간 48시간이라는 기록까지 나왔다.
- 음성·더빙·다국어 현지화 — 인물별 음색과 감정을 지정해 자동 더빙을 붙인다. 중국 공영 미디어 그룹(CMG)은 스크립트 생성부터 번역·더빙까지 전 과정을 AI가 담당하는 다국어 마이크로 드라마를 이미 공개했다.
- 배포·AB테스트·리텐션 최적화 — 클릭률·시청 유지율·댓글 반응을 실시간 피드백으로 삼아 후속 에피소드의 톤과 전개를 수정한다. 이른바 “AI·시청자 공동 집필” 구조다.
바이트댄스의 시댄스(Seedance) 2.0, 콰이쇼우의 Kling 3.0, 셍슈의 비두 등 중국 AI 툴들은 기획–시나리오–촬영–편집–배포 전 과정을 사실상 자동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과거 감독·작가·촬영팀·배우가 수행하던 역할 대부분은, 이제 모델과 플랫폼 알고리즘이 나눠 갖는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중국 정부와 ‘콘텐츠 공장’ 생태계
중국식 AI 드라마 공장이 빠르게 자리 잡은 배경에는 지방 정부와 국영 미디어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다.
- 충칭시는 세로형 콘텐츠 제작을 위해 ‘량장 영화·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문화창작공원’을 조성해 매년 300개 이상의 제작팀을 끌어 모은다.
- 저장성 린핑시는 1억 위안 이상을 투입해 중국 최초의 마이크로 드라마 전용 제작 기지를 세웠으며, 세금 감면·GPU 제공·데이터 접근·트래픽 우대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 국영 방송사 CCTV와 CMG는 AI로 전적으로 제작한 마이크로 드라마 시리즈를 직접 공개하고 있다. 국가 기관의 직접 실험은 이 산업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국가 전략 산업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국가 라디오·텔레비전 총국(NRTA)은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등록·심사 의무를 강화하며 통제도 병행한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GPU+데이터+플랫폼+규제”*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타국이 단기간에 모방하기 어려운 폐쇄형 생태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노동·권리·저작권: 공장의 그늘
AI 마이크로 드라마 공장은 비용과 효율의 혁명을 가져온 만큼, 그 이면에는 거대한 노동 재편과 권리 침해 논란이 따라 붙는다.
노동 — 일감 단절과 신직종 부상. 중국 현지 인터뷰에 따르면 단역 배우와 엑스트라를 중심으로 “몇 달 사이 일감이 갑자기 끊겼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마치 비가 오다가 갑자기 그친 것 같다.
— 한 단역 배우, 구직 정보 단체 채팅방이 조용해진 상황을 표현하며
제작비에서 가장 비싼 축이던 배우·촬영 인력이 줄어드는 대신, 프롬프트 엔지니어·AI 작가·영상 합성 오퍼레이터 같은 새로운 직종이 늘고 있다.
권리 — 초상권·퍼블리시티권 회색지대. 개개인의 얼굴과 목소리가 동의 없이 AI의 학습·합성 재료로 쓰이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진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시청자가 AI 캐릭터에서 실제 배우를 알아볼 수 있다면 초상권·퍼블리시티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식별 가능성’이 새로운 기준이다.
저작권 — 주체 모호성. 인기 웹소설·만화·게임을 무단으로 학습·각색한 AI 드라마가 늘면서 분쟁의 불씨가 커지고 있다. AI가 생성한 대본과 영상의 저작권 주체가 모델 개발사인지, 플랫폼인지, 프롬프트 작성자인지에 대한 법적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글로벌 확산과 K드라마에 주는 신호
중국에서 시작된 마이크로 드라마는 이미 미국·동남아를 포함한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 2025년 1~8월 해외 마이크로 드라마 매출은 15억 2,5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95% 증가했다.
- 중국계 플랫폼 릴숏은 2024년 한 해에만 해외 매출 4억 달러를 기록했다.
- 할리우드 제작자들도 세로형 연속극을 차세대 포맷으로 보고 전용 스튜디오와 펀드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AI를 도입한 숏드라마 제작이 시작됐다. 다만 중국식 물량 공세가 전 세계 알고리즘 피드 상단을 장악할 경우, K드라마의 존재감이 점점 ‘롱폼 프리미엄’ 영역으로 한정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K드라마 인플레이션 위기에 대한 대안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저예산으로 쏟아내는 콘텐츠가 하나의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유키 비, 브랜드 컨설팅사 헬리오스 월드와이드 CEO
AI 마이크로 드라마가 주는 의미
기사는 마지막에 네 가지 함의를 정리한다.
- IP 가치 평가가 데이터로 수렴한다. 감독과 작가의 감각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클릭률·유지율·전환율 데이터가 IP의 가치 평가 기준이 된다. 반복 시청 패턴과 반응 데이터가 쌓일수록 AI는 다음에 잘 팔릴 이야기를 더 정확히 예측하고, 이는 다시 제작 의사결정을 자동화한다.
- 포트폴리오 모델 vs 블록버스터 리스크 모델. 소수의 초대형 K드라마·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와 달리, 중국식 AI 공장은 수백 개의 소규모 시도 중 일부만 성공해도 포트폴리오 전체 수익이 맞아 떨어지는 구조를 만든다.
- 창의성의 보상 구조가 다시 쓰인다. 카메라 앞 배우와 세트 현장 스태프의 역할 일부가 키보드 앞에서 프롬프트를 짜고 파이프라인을 설계하는 사람들로 이관된다. 단순히 직업이 사라지는 차원을 넘어, 어떤 종류의 창의성이 보상받는가의 문제다.
- AI 학습·합성 권리 조항의 계약 필수화. 개개인의 얼굴·목소리가 동의 없이 AI의 학습·합성 재료로 쓰이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원자재이자 폭발력 있는 법적 리스크가 된다. 엔터테인먼트 계약서에 ‘AI 학습·합성에 대한 권리 조항’이 매우 중요해진다.
결론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닫힌다.
어느 한쪽만이 정답이 되기보다는, “AI 공장으로 버는 돈"과 “프리미엄 창작을 지탱하는 구조"를 어떻게 연결할지가 앞으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
내가 가장 눈여겨본 대목은 4단계 파이프라인의 마지막, ‘AI·시청자 공동 집필’ 구조다.
클릭률·유지율·댓글이 실시간으로 후속 에피소드를 수정한다는 것은, 본래 모바일 게임에서 일상화된 AB테스트·리텐션 최적화 방법론이 콘텐츠 제작 전반을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솔로 레벨링이 시스템창을 들고 들어와 웹툰의 문법을 게임 논리로 정렬시켰듯이, 마이크로 드라마는 KPI를 들고 들어와 드라마의 평가 기준을 게임의 KPI로 옮긴다.
콘텐츠가 점점 게임처럼 운영되는 시대에, ‘재미를 어떻게 데이터로 측정하느냐’가 IP 가치의 핵심 변수가 된다는 점은 K-콘텐츠가 다음 5년 동안 답해야 할 질문이다.
출처
- 저자: 이승환 (경기연구원 AI연구실장)
- 연재: 이승환의 AI 시그널 16화
- 매체: 오마이뉴스
- 발행일: 2026-05-13
- 원문: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33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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