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AI로 해고된 노동자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해고가 누적되면 모든 기업의 매출이 줄어드는 ‘수요 외부성’이 발생한다.
- 이 사실을 모든 기업이 완벽하게 알고 있어도, 경쟁 구조가 과잉 자동화를 강제한다. 죄수의 딜레마다.
- UBI도, 자본소득세도, 기업 간 협상도 이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유일한 해법은 피구세(Pigouvian tax)다.
절벽이 보이는데 왜 달려가는가
UPenn과 BU의 경제학자 Brett Hemenway Falk와 Gerry Tsoukalas가 2026년 3월에 발표한 이 논문의 출발점은 단순한 질문이다. AI가 노동자를 대체하면 비용은 줄어들지만, 해고된 노동자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소비력이 사라지면 결국 모든 기업의 매출이 줄어든다. 극단적으로는 “무한한 생산성과 제로 수요"라는 자기파괴적 결말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기업이라면 이 절벽을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현실에서는 Block이 인력의 절반을 감축하고, Salesforce가 4,000명의 고객지원 인력을 에이전틱 AI로 교체했다. 2025년에만 10만 명 이상의 테크 인력이 정리해고되었고, 그 절반 이상에서 AI가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절벽이 보이는데도 기업들은 달려가고 있다. Salesforce가 4,000명을 교체하면서 절감한 비용은 Salesforce가 전부 가져가지만, 그 4,000명의 소비력 감소는 시장 전체에 분산된다 — 이것이 바로 논문이 포착하는 구조적 비대칭이다. 논문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는지를 게임이론으로 증명한다.
모델: 비용은 내가, 수요 파괴는 남이
Acemoglu & Restrepo(2018)의 과업 기반 프레임워크를 차용하되, 노동시장이 아니라 제품시장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다. 설정은 다음과 같다.
N개의 대칭 기업이 있고, 각 기업은 자동화율(전체 업무 중 AI로 대체하는 비율)을 선택한다. AI로 대체된 과업은 비용이 싸지지만, 통합 마찰 비용이 점진적으로 올라간다. 해고된 노동자의 소득 중 일부만 재취업 등으로 회복되고, 나머지는 소비력에서 영구 이탈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비대칭이 발생한다.
기업 A가 노동자를 해고하면, A는 비용 절감의 전부를 가져간다. 그런데 해고된 노동자가 소비를 줄이면서 발생하는 수요 감소는 시장 전체에 분산된다. A가 부담하는 수요 손실은 전체의 1/N뿐이다. 나머지 (N-1)/N은 경쟁사가 떠안는다.
이것이 수요 외부성이다. 비용은 독식하고, 피해는 분산시키는 구조. 공해를 배출하는 공장이 비용은 자기가 절감하면서 대기오염은 이웃에 떠넘기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다만 공해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공해의 피해자는 공장 밖에 있지만, 수요 외부성에서는 해고된 노동자가 바로 그 기업의 고객이기도 하다. 피해가 되먹임된다. 이 자기강화적 구조가 문제를 공해보다 더 까다롭게 만든다.
과잉 자동화: 알면서도 빠지는 덫
이 비대칭 때문에 각 기업의 개별 최적 자동화율은 전체의 이익을 위한 협력적 최적보다 항상 높다. 그 차이를 논문은 ‘과잉 자동화 쐐기’라고 부른다.
| 기준 | 자동화율 | 의미 |
|---|---|---|
| 내시 균형 | 개별 기업의 우월 전략 | 각 기업이 합리적으로 선택한 수준 |
| 협력적 최적 | 전체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는 수준 | 모두가 합의하면 여기서 멈출 것 |
| 쐐기 | 둘의 차이 | 기업 수가 많을수록 커진다 |
여기서 반직관적인 결과가 나온다. 경쟁이 심할수록 과잉 자동화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보통 경쟁은 소비자를 보호하는 메커니즘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수요 외부성 맥락에서는 정반대다. 기업 수가 많을수록 각 기업이 체감하는 수요 손실 비중(1/N)이 줄어들어, 자동화를 자제할 유인이 약해진다. 독점기업(N=1)은 이 외부성을 완전히 내재화하지만, 완전경쟁에 가까울수록 과잉 자동화가 극대화된다.
Figure 1(a): 기업 수가 많고 비용 절감이 클수록(오른쪽 위), 과잉 자동화 쐐기가 커진다.
AI 비용이 더 내려가면? 임계치가 함께 내려가서, 사실상 모든 경쟁 시장이 과잉 자동화 영역에 진입한다.
통합 마찰이 아예 없는 극한에서는 게임이 순수한 죄수의 딜레마로 수렴한다. 전면 자동화가 모든 기업의 우월 전략이 되지만, 전원이 자제하면 모두에게 이득인 상황이다. 자동화가 우월 전략이므로 “같이 자제하자"는 합의는 자기 집행이 불가능하다. 약속을 어기는 쪽이 항상 이득이기 때문이다.
양쪽 다 진다
그렇다면 이 게임에서 적어도 기업주는 이기는가? 자동화로 비용을 줄였으니 이윤은 올라갈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과잉 자동화로 인한 손실은 “노동자에서 자본가로의 이전"이 아니다. 노동자는 소득을 잃고, 기업주도 수요 감소로 이윤이 줄어든다. 내시 균형은 파레토 열위(Pareto dominated)다. 즉, 협력적 최적으로 돌아가면 양쪽 모두가 더 나아진다.
Figure 2(a): 자동화율이 올라갈수록 기업주 잉여도, 노동자 소득도 동반 하락한다.
Figure 2(b): 균형점(α^NE)은 협력적 최적(α^CO)보다 남서쪽에 놓인다. 재분배가 아니라 사중 손실이다.
이것은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의 문제다. 파이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여섯 가지 정책: 다섯은 실패한다
논문은 여섯 가지 정책을 같은 잣대 — 수요 외부성을 교정하는가 — 로 평가한다.
무력한 정책들
보편적 기본소득(UBI): 모든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면 소비 바닥은 높아진다. 그러나 자동화의 한계 비용-편익 구조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윤의 ‘수준’은 변하지만 전략적 ‘차이’는 불변이므로, 기업의 자동화 의사결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UBI는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다.
자본소득세: 이윤에 비례세를 부과하면 모든 이윤이 같은 비율로 줄어들 뿐, 자동화 여부에 따른 상대적 이득은 변하지 않는다. 균형 자동화율은 동일하다.
코즈 협상: “기업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접근. 자동화가 우월 전략이기 때문에 자발적 합의는 자기 집행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단순한 조정 실패(어떤 균형을 고를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외부성이다.
부분적으로 작동하는 정책들
업스킬링/재훈련: 해고된 노동자가 빠르게 더 나은 일자리에 재취업하면 소득 대체율(η)이 올라가고, 수요 손실 자체가 줄어든다. η=1이면 외부성이 사라진다. 다만 현실에서 해고 노동자의 소득 손실은 크고 지속적이어서, η는 1보다 훨씬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노동자 지분 참여: 노동자가 기업 이윤의 일부를 받으면 자동화 임계치가 올라가고 쐐기가 축소된다. 그러나 완전 제거는 불가능하다.
유일한 해법: 피구세
자동화된 과업당 “내재화되지 않는 수요 손실"만큼의 세금을 부과하면, 각 기업의 최적 자동화율이 정확히 협력적 최적과 일치한다. 공해에 대한 탄소세와 같은 논리다. 외부 비용을 가격에 반영시켜, 시장 메커니즘 안에서 교정하는 것이다.
이 세금에는 자기 제한적 속성이 있다. 세수를 재훈련에 투입하면 소득 대체율(η)이 올라가 외부성 자체가 줄어들고, 필요한 세율도 내려간다. 문제가 풀릴수록 세금도 줄어드는 구조다.
Figure 2(c): 사회적 플래너가 노동자 복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기업 이윤만을 극대화하려 해도, 과잉 자동화 쐐기는 존재한다.
더 좋은 AI가 문제를 키운다
논문은 다섯 가지 확장으로 핵심 결과의 강건성을 검증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붉은 여왕(Red Queen) 효과’다.
AI 생산성이 올라가면 각 기업은 경쟁사보다 먼저 자동화해서 시장점유율을 빼앗으려 한다. 그러나 대칭 균형에서 이 이득은 서로 상쇄되고, 수요 파괴만 추가된다. “더 좋은 AI"는 외부성을 완화하기는커녕 쐐기를 넓힌다. “기술이 좋아지면 결국 해결된다"는 통상적 낙관론이 이 모델에서는 정확히 반대로 작용하는 셈이다.
내생적 임금 조정도 검증했다. 임금이 유연하게 조정되면 외부성이 발동하는 임계점이 높아져서, ‘언제’ 문제가 시작되는지는 바뀐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으면 쐐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임금 유연성은 시한장치의 타이머를 늘릴 뿐, 폭탄을 해체하지는 못한다.
자유 진입은 더 나쁘다. 기업이 자유롭게 진입하면 N이 커져 쐐기가 오히려 확대된다. UBI가 이윤을 높여 신규 진입을 유도하면, 시장이 세분화되어 UBI의 복지 효과가 부분적으로 상쇄되는 역설까지 발생한다.
이 논문을 읽으며 든 생각
이 논문이 흥미로운 것은 결론 자체보다 결론에 이르는 경로다.
“AI가 일자리를 없앤다"는 직관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다. “그래서 세금을 매겨야 한다"도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이 논문은 왜 다른 정책이 안 되는지를 하나하나 증명해 보인다. UBI가 왜 무력한지, 자본소득세가 왜 1차 조건을 건드리지 못하는지, 코즈 협상이 왜 자기 집행 불가능한지. 그 소거법이 설득력을 만든다.
특히 “경쟁이 많을수록 더 나쁘다"는 역설이 인상적이다. 경쟁이 효율을 보장한다는 경제학의 기본 직관이 수요 외부성 하에서는 정확히 뒤집힌다. 경쟁이 심할수록 각 기업이 체감하는 수요 손실이 희석되어, 과잉 자동화 경주가 가속된다.
그리고 한 가지 — 이 논문의 모델은 의도적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단일 섹터, 대칭 기업, 동질적 상품. 현실 경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생겨나는 채널이 있다. 저자들도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 단순한 모델이 보여주는 것은, 심지어 가장 투명하고 합리적인 환경에서조차 경쟁 구조가 과잉 자동화를 강제한다는 사실이다. 현실이 더 복잡하다면, 문제도 더 복잡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AI 과업당 비용은 분기마다 내려가고 있고, 이 모델이 말하는 임계점은 그만큼 빨리 다가온다. EU는 AI법(AI Act)에서 고위험 자동화 시스템의 규제 프레임워크를 갖추었지만, 자동화의 수요 외부성을 직접 겨냥한 세제 설계는 아직 어떤 국가에서도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 이 논문은 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가장 깔끔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출처
Brett Hemenway Falk (University of Pennsylvania), Gerry Tsoukalas (Boston University). 2026년 3월 2일. 원문: https://arxiv.org/abs/2603.20617